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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31일, 화요일.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에도 해는 일찍 뜬다.

두 달을 넘게 체류하며 단 한 번도 일출을 보지 못한 우리는,

마지막 날이라도 힘을 내보기로 한다.



매일같이 걷던 바다로 가는 길도

바람막이가 없이는 힘든 새벽이 됐다.

아침저녁으로는 기온이 20도 아래로 떨어진다.

까딱하다간 감기 걸리기 십상.



다섯시 반 쯤 알람을 맞춰 바다에 나왔으나

이미 하늘은 붉어지기 시작한 뒤였다.

타임랩스 찍기는 포기하고,

사우디 아라비아를 거쳐 떠오르는 해를 기다린다.



주위를 둘러봐도 일출을 기다리는 인간은

우리 뿐이다.

가끔 물고기가 튀고 발 밑으론 게가 지나는

흔한 다합의 새벽.



다행히도(?) 해가 떠오를 때 까지

붉은 하늘의 시간이 길었다.

그간 느끼지 못한 새벽 분위기를

맘껏 폐 속에 집어넣는다.



사진만으로는 일출인지 일몰인지 분명치 않은

이 시간이 즐겁다.

밤문화를 즐기던 사람들도 집에 들어간,

가장 많은 사람이 잠들어 있는 시간.



검고 깊게만 보이던 바닷물은

천천히 하늘색을 되찾아 간다.

진작에 몇 번 더 일어나 일출을 즐기지 못한 게

아쉽다면 아쉬움.



심지어 내 실루엣도 청초하다.

이런 느낌을 의도한 게 절대 아닌데,

무슨 멱 감는 아낙네 처럼 나왔다.



이건 그나마 괜찮은 편.

그림자 사진을 찍고 놀기에도 제격이다.

방향이 바뀌는 중인지

바람도 잠시 멈춰있어 더 좋음.





당분간은 이 바다에 들어갈 일이 없다는 게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향수에 빠지는 것 말고도 할 일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이다.



윈도우 배경화면처럼 나온 사진.

카메라와 렌즈는 물에 젖은 느낌을

잘 잡아줘서 좋다.

저조도 환경에서 특히 빛을 발하는 카메라.



슬슬 바다건너 외국 위로 해가 보인다.



두 달 만에 성공한 해돋이.

하긴 다른 곳 여행을 다닐 때나 심지어

서울에 살 때도 이 시간에 깨어있기는

쉽지 않지.



새벽 햇살이 새벽 바다를 천천히 적신다.



일출 끝!

뜬금없이 바이칼이 생각나기도 한다.

얼어붙은 시베리아에서 돌을 고르던 게

바로 어제 같은데,

이집트 시골 해안가에서 일출을 즐기고 있다.

​​​​​​​​​

붉은 빛을 띠는 바닷길을 따라 집으로.



일찍 일어난 개 한마리가 목덜미를 긁는다.

얼마 전의 사고때문에 큰 개는

근거없이 두려움이 생기지만,

한 번도 우리에게 적의를 나타낸 적은 없다.



이제 끝.

마지막으로 집을 나오기 전에

주인과 약간 실랑이가 있던 것만 빼고는

평화롭게 하루가 진행되었다.

알고보니 손님을 빨리 받고싶어서

우리와 한 시간약속을 멋대로 바꾼 거라

기분이 좀 나빴지만,

뭐 어쩌겠나.



두 달 동안 사용하고 남은 냄비와

식재료들을 정리해서

우리를 도와주셨던 분께 싹 드렸다.

어디든 정착하기 시작하면 짐만 늘어나서

움직이기 버거워진다.



집주인에게 어이없이 저녁도 못먹고 쫓겨나

마지막 끼니로 먹은 타진.

버스 출발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짐을 맡기고 시내를 어슬렁거렸다.

고버스 터미널 짐 보관은 개당 10파운드.



고버스 사무실에 붙어있던 시간표.

9시 30분 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이젠 없어졌다고 한다.

홈페이지에서도 검색이 안되는 걸로 봐선

진짜 없어진듯.

눈물를 머금고 310파운드짜리 비싼 티켓으로

구입했다.



우리들의 오르카 다이빙샵.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우리가 탄 버스와 나눠준 간식.

아무래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체류중이라

다른 한국분들을 배웅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한 분이 술에 취해서 목소리가 컸다는 것만 빼고는

무난한 새벽.



터키에서 아주 잠깐 마주쳤던 나래님에게

받은 간식까지 싸들고 출발했다.

두 달의 체류동안 주로 집에 박혀서

몸과 마음을 쉬느라 좋았던 다합.

요즘은 환율이 더 떨어져서 더 살기 좋을지

모르겠다.

다합생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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