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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5일, 토요일.

몇 시간이나 달렸을까.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많은 것들을 두고올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다.

영사관 직원분의 도움과 아주 운좋게 남아있던 몇 개의 짐 덕분에,

한국으로의 귀환이라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은 터였다.

그런 나의 창가에 갑자기 나타난 파타고니아의 풍경.






생전 처음보는 지구의 아름다움은 고통도 슬픔도 잠시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다.



살아본다면 이런 곳이 좋겠다.

이게 파타고니아를 처음 접한 나의 감상이었던 것 같다.



상실감은 잊을만하면 찾아온다.

바릴로체의 숙소는 노트북 작업 공간이 잘 갖춰져 있으며

앉은 자리에서 보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잡았었다.



예를 들면 이런 풍경.

값은 조금 나갔지만 조금 쉬며 밀린 블로그나

사진 작업을 할 생각이었지.



하지만 내 손에 남은 건 핸드폰과 여권, 신용카드 한 장이 전부.

여행도 삶도 왜 계속되는걸까, 하는 중2병이 도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숙소 작업공간 뿐 아니라 방 창가에서도 보이는

이런 풍경들은 내 상실감을 조금씩 희석시켜주었고,

파타고니아를 처음 와서 다행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현실은 공짜 크래커에 남은 딸기잼ㅋ

배고픈 밤은 서럽다.

그렇게 다음 날.

2017년 11월 26일, 일요일.



방에만 있기가 우울해 마을 구경을 나섰다.



스위스 출신 이민자들이 만든 마을 바릴로체.

폐로 밀려드는 맑은 공기와 여유로운 분위기,

군데군데 문을 연 초콜렛 가게는

(가보지는 않았지만)스위스에 온듯한 느낌을 준다.



스위스 양식의 오두막집 샬레.

이민자들은 19세기쯤부터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바릴로체의 중심이 되는 광장, 센트로 시비코.

건축가 에르네스토에 의해 1940년경에 완성된 이 광장은

1987년에 국가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바릴로체 시가지 구경의 시작과 끝,

그리고 현지 주민들의 휴식처이자 놀이터인 이 광장은

하루종일 활기가 넘친다.





호수가, 만년설이 한 눈에 보이는 광장.

채 봄이 오지 못한 파타고니아는 쓸쓸하다.

건조하고 찬바람이 불지만 햇살이 강한 이곳은

있는 내내 한국의 가을날씨를 느끼게 했다.

현실의 한국은 미세먼지로 덮혀있겠지만.



우리는 초콜렛을 사지도, 박물관이나 성당들을 구겅하러 다니지도 않았다.

다만 천천히 걸어다니며 마음을 비운것 같다.



이쯤되면 짊어지고 다닐 전자제품이 없는 게 홀가분하다.

풍경이 워낙 아름다우니 핸드폰으로 대충 찍어도 잘나옴.




줄곧 멀리서만 바라보던 바릴로체의 호수.

이름은 나우엘 우아피 호수,

이 호수에 있는 섬 중 가장 큰 섬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그 뜻은 ‘재규어의 섬’ 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이 호수의 물은 만년설과 빙하로부터 왔으며,

표면온도는 연평균 7도로 매우 차갑다고 한다.

차고, 깨끗한 물에서 나는 송어는 정말 맛있다고.

숙소에서도 호숫가에서도 수도없이 많은 시간을 이 호수를 바라보며 보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해가 길어지고 있는 시기의 파타고니아는 좀처럼 밤이 오지 않는다.

몸도 맘도 지쳐있었지만 이 예쁜 마을과 호수,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 덕에 우리는 다시 여행할 수 있는 멘탈을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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