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한국/-

우산을 쓰다 / 심재휘

Vagabund.Gni 2022. 4. 25. 17:07
728x90
반응형

어제는 꽃잎이 지고

오늘은 비가 온다고 쓴다

현관에 쌓인 꽃잎들의 오랜 가뭄처럼

바싹 마른 나의 안부에서도

이제는 빗방울 냄새가 나느냐고 추신한다

 

좁고 긴 대롱을 따라

서둘러 우산을 펴는 일이

우체국 찾아가는 길만큼 낯설 것인데

오래 구겨진 우산은 쉽게 젖지 못하고

마른 날들을 쉽게 접히지 않을 터인데

 

빗소리처럼 오랜만에

네 생각이 났다고 쓴다

여러 날들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많은 것들이 말라 버렸다고

비 맞는 마음에는 아직

가뭄에서 환도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너무 미안하다고 쓴다

 

우습게도 이미 마음은

오래전부터 진창이었다고

쓰지 않는다

우산을 쓴다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최측의농간

반응형

'한국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미(幾微) -리안에게 / 김경주  (2) 2022.04.30
공원의 전개 / 윤은성  (0) 2022.04.28
다른 이야기 / 김소연  (0) 2022.04.28
나에게 주는 시 / 류근  (0) 2022.04.26
뱀딸기의 효능 / 류근  (2) 2022.04.24
내 워크맨 속 갠지스 / 김경주  (2) 2022.04.23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