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이 초승달 같아 사랑해도 돼? 맑은 날이야 이렇게 맑은 날이 없었어 우리가 같이 있으면 언제나 촛불이 꺼지는 걸 보았으니까 투명한 등불 속에서도 서로의 눈빛을 답습해야 했거든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나는 오래전 서리당해 창고에 박혀 있다 이렇듯 너를 사랑하나 효력이 없는 문장이야 우리의 세계에선 비를 맞는 것들만 소리를 내지 비는 조용해 모래사장에서 발과 발이 서로 멀어지는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너무 오랫동안 하늘을 본 사람에게 나는 내리고 싶어 누구도 기르지 않았던 차가운 꽃으로 그의 이마를 쓸어내리며 풍경의 서사를 아니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들에 버려져 있어 날짜가 지난 달이 떠 있다 하고 싶은 말 있는 듯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사람처럼 약속은 나무 위에서 우리를 들여다보다 한 번도 내..
소리 내지 말자 귀들이 다 없어지도록 칼날을 내부의 사랑이라 하자 피 묻힌 손으로 얼굴을 지우고 있다 하자 얼굴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하자 그 어떤 소리도 없다 하자 말들은 모두 울다 잠들었다 하자 미친 사람은 울부짖던 말에 칭칭 묶였다 하자 묶은 것이 지상의 사랑이라 하자 사랑은 사로잡힌 것이라 하자 사로잡힌 것에 타들어갈 수 있다 하자 미친 사람은 씻지 않고 검어진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몸에서 놓여난다 밝아오는 것은 묶인 것이다 허공은 다 타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라 하자 숲길은 세상에 없다 하자 숲길은 세상에 있다 하자 배가 제일 고파질 때 찾아오는 것이 죽음이라 하자 죽음은 맨 끝의 식욕이라 하자 가장 절박한 식욕이라 하자 생존이었다면 굶주림은 제 입도 같이 씹었다 제 살을 쉴 새 없이 삼키며 ..
그가 생글생글 웃으며 묻는다. 끝이 여엉 하고 뭉개진다. 눈에도 웃음. 입에도, 말에도 묻어나는 웃음. 연습한 걸까? 그와 자고 싶은 건 아니다. 자라면 못 잘 것은 없겠지만 어떻게 생겼든 웬만하면 그의 자지를 굳이, 딱히, 보고 싶지는 않다. 다 벗더라도 거기만은 가리라고 하고 싶다. 아니, 천을 휘감긴다든가, 맥퀸이 만들던 맥퀸이나 베르사체가 만들던 베르사체 같은 것을 입히고, 아니, 아니야, 그냥 티셔츠, 보풀이라든가, 올이 보이지 않는, 그런 티셔츠를 입히고, 아니야, 옷이야 상관없겠지. 깨끗하기만 하면 된다. 아니, 구겨진 옷이라도, 흉한 밴드 처리가 되어 있는 운동복이라도, 드러난 손목, 발목, 거기에 감긴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완벽함을 얻게 될 것이다. 구불구불 대는 밴드와 거기에 박음..
조금 일찍 쓰련다. 찬란했다고. 금을 잘못 밟고 들어선 이 섬뜩한 세계는 살기보다는 팽창하기를 요구했다. 버젓한 한 세계로의 도착이 아닌 것 같아 너무 많은 것을 헤매며 사용했다. 감정까지도 빛이 들지 않는 자리의 눈은 좀처럼 녹지 않고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의 먼지는 둘레를 키운다. 이 모두 내가 저지른 일만 같다. 안쪽의 사건들을 이해하겠노라고 바깥은 나를 받쳐냈다. 바닥에 끌리는 것들만 힘껏 받쳐야 할 게 아니라 명치에 도착하고 남은, 이 모르는 것들까지도 받쳐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자상한 시간들. 차가운 물의 명백함을, 물이 들어 지워지지 않는 그 격렬한 시간들을 차마 어떻게 마주한 것인지. 균형이었는지. 전부였는지. 그러므로 조금 미리 쓰련다. 당신도 찬란했다면 당신 덕분에 찬란했다고. - ,..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것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한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
밤이 없는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길들은 모두 샅샅이 드러나고 세상의 말들은 모두 자명해졌습니다 자명해졌으나 점점 빛이 바래가고 그늘이란 그늘은 모두 조금씩 제 꼬리를 감추었습니다 우리의 음지식물들도 모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엔 좋아했지요 드디어 꿈꾸던 세상이 왔다고 만세를 부르던 사람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곧 사람들은 당국을 지지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둠을 잃었어요 어떤 어둠도 거느리지 않은 사람들은 점점 밝아졌지요 밝아지다 희미해졌어요 대지도 나라도 희미해졌지요 계속되는 대낮이 고통일 줄은 그때는 몰랐던 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통을 느끼는 일도 슬피 우는 일마저도 곧 검열의 대상이 되었답니다 그곳의 괴물들은 무사한지요 밤의 골목들을 어슬렁거리던 괴물들은 이제 이곳..
이것이 드라마나 영화라면 지금이 마지막 장면일 것이다 영대의 얼굴에 드리운 거리의 빛을 보며 형식은 생각한다 겨울밤 사람들의 입에서는 조금씩 영혼이 흘러나오고 있다 조명이 꺼진 실내로 크리스마스캐럴이 흘러들어오고 있었고, 형식과 영대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 사람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어떻게 이 작은 땅에 저렇게 많은 사람이 살고 있을까 형식은 사랑을 시작하려다 말고 밖을 보며 생각한다 그것은 갑자기 찾아온 침묵을 견디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때를 천사가 찾아온 것이라 한다고, 형식은 영화에서 들은 말을 떠올린다 그 또한 영화의 마지막에 가까운 장면이었다 밤은 고요하고 거룩한데 사람들은 아직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밖을 헤매고 말 없는 영대의 입에서 영혼의 흐린 빛이 흘러나왔다 침묵..
어느 저녁 정약용이 친구 이서를 불러 어두운 실내에 다른 물건들을 물리고 촛불과 국화만을 두니 놀라운 문양이 벽면에 나타나 그 기이한 모습을 밤새 즐겼다고 한다 그렇군요 그런 사랑도 있는 법이군요 찻잎이 혼자 선다거나 멀쩡한 그릇이 혼자 깨지기도 하지만 해가 길어진 여름 저녁 거실 벽에 생긴 그림자를 보고도 이제는 놀라지 않습니다 식탁 위에는 내가 먹지 않은 음식들 깨지지 않은 그릇을 부시며 생각합니다 깨지지 않은 그릇을 부수며 통곡합니다 당신의 어둠이 당신의 존재와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군요 "기이하다. 이야말로 천하의 빼어난 경치로구나" 정약용과 이서는 밤새 술을 마시고, 또 시를 읊었습니다만 이제 아무도 시를 읊지는 않겠지요 혼자 흔들리는 그림자가 있고 그걸 보며 밤새 우는 사람이 있고 그걸 사..
책을 펼치면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 그게 참 재미있다 서로 사랑하기도 하고 개를 끌고 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세상을 구하거나 끝낼 때도 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그게 진짜는 아니라는 것 이것은 네가 쓴 책의 부분이다 하늘이 푸른데 하늘이 푸르다고 책에 쓰여 있다 마음이 무너졌는데 슬픔에 빠져 매일 술에 취해 있다고 쓰여있다 내 영혼의 불꽃, 그렇게 쓰여 있다 눈밭 위의 고독이라고도 쓰여있다 너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책에 있는 것 멀리 지나가는 새들의 이름이 책에 있다 새의 모양과 생활사도 있다 책을 덮으면 새를 무서워하는 네가 있고 흘러가는 시간이 있고 새가 지나갔으나 보이지 않는 궤적이 있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모르는 것 너는 사람들이 잠들면 아주 큰 책이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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