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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여기 있는 줄 몰랐다

세 번이나 뒤돌아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나사 같은 허공을 급히 뛰다 추락할 뻔했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은 목숨을 끊었다 내가 진작 잘했어야 했다

뚝뚝 흘리는 눈물을 보다 못한 경비원이 자리를 피해주었다

 

⎯ 몰래 당신의 피에 손을 넣어본다 내 입에 흘려 넣어주던

당신의 피가 아직 따뜻하다 목숨한테 잘하는 법을 몰랐다

시늉뿐임을 알자 당신은 끝내 떠났다 지금이라도

액자 속으로 넘어가 뒤꿈치라도 잡아야 한다

참다 못한 경비원이 나를 떼어 거리로 집어던졌다

 

다음 날 또 간다 당신이 멀리 옮겨갔다고

늦게라도 잘하려는데 거짓말로 당신을 빼돌리려한다

하지만 속은 건 경비원이다 나는 당신 뒤에 숨었다

하룻밤을 보내고 반지를 사서 돌아올 생각이다

 

그러나 당신의 무덤을 나서자

당신은 사라지고 이제 당신 없는 세상이 너무 만만할 테니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에서 경비원이 셔터를 내린다

 

-<밤의 입국 심사>,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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