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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 구현우

Vagabund.Gni 2022. 5. 4.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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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가 젖어 있다. 어저께 비가 온 것은 아니다. 오늘 소나기가 지나간 적도 없다. 예보에서 이번 해는 장마 없이 폭염이 시작될 거라고 한다.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일생 동안 내내 얼어붙은 계절을 지나

  첫번째 겨울잠에서 깬 당신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다. 당신의 화법은 침묵과 나의 추측으로 구성되었다.

  담벼락에 낙서된 두 개의 이름이 갈라지고 있다.

  라디오에서 나오던 아일랜드 출신의 밴드 음악이 잡음으로 일그러지고 있다.

 

  상관없이 젖은 거리가 이유 없이 마르지 않는다.

 

  그해 한쪽에서 연인이 되는 것으로 짝사랑이 끝났고 반대편에서 짝사랑인 채 연인이 끝났다.

 

  처음 신은 신발이 축축해진다. 어젯밤 쌓였던 음식물쓰레기가 반으로 줄어 있다. 집집마다 불이 꺼지고 누군가가 미워지는 시간

 

  고양이 한 방울 개 한 방울 버스 한 방울 비안개 한 방울 유화 한 방울

 

  굴러가는 돌의 모든 면이 젖는다.

 

  아프다고 생각하자 병이 시작되었다.

  건조한 계단을 오르다

2층의

  내과와 외과를 동시에 보고

  나는 다른 곳에서의 실연을 생각했다.

 

-<나의 9월은 너의 3월>,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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