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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에 전염병과 전쟁과 귀신이 창궐해 있어서

창을 닫아도 소용없고 피난 갈 곳도 없어서

그녀는 아이들을 집에서 놀리고 밥 먹이고,

불러 앉혔다

어디에도 살 길이 없단다

이제 잠깐 살기로 하자, 살기로 하자, 기도하는

꿈에서 깨어났다

 

창밖에 전염병과 전쟁과 귀신이 창궐해 있었는데

문을 활짝 열고

서둘러 아이들을 씻겨 학교에 보낸 뒤,

그녀는 마트에 갔다

어디에도 죽을 길이 안 보여서

커피를 마셔볼까? 중얼거렸다

낮술을 한잔할까?

 

오후엔 잤다

어디에도 죽을 길이 없어서 우두둑

부활하듯 기지개를 켰지만,

이상한 날이다

해가 진 지 오래인데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뉴스에, 뉴스가 나오지 않는다

 

-<끝없는 사람>,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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