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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의祭儀> / 허연

Vagabund.Gni 2023. 7. 1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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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을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은 떠나보낼 게 많은 사람이다. 폭우 지나간 철제 다리 위로 이국처럼 노을이 진다. 쓰레기봉투 몇 개 떠다니는 몸집 불린 강을 내려다본다. 오늘도 강에선, 누구는 몸을 던졌고 누구는 떠올랐고, 누구는 몇 달도 못 갈 사랑을 읊조렸다.

    제물은 늘 필요하다. 몇은 이번 장마의 제물이 됐고, 한 겹의 뻘이 되어 하구 모래톱에 쌓였다.

    영역 다툼에 지친 물새들 줄지어 지나간 모래톱. 병든 고양이가 다 포기한 듯 졸고 있다. 고양이는 이번 장마의 마지막 제물이 될 것이다. 그에게 지금 이 짧은 햇살은 냉정하게 따사로울 것이다.

    이곳에선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없다. 슬픔도 기쁨도 없다. 쓸려갈 것과 남은 것, 그것만이 가능하다. 검은 구름 저편에 속삭이듯 어둠이 온다. 오늘의 제의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떠내려가다 강둑에 멈춰선 컨테이너 조각엔 마지막 낙서가 흐릿하다 새 떼가 날아올랐다

 

-<오십 미터>,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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