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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만 남고 주법은 소실되어버린 공후를 본다. 휴休만 남고 용用은 사멸되어버린 악기, 썩어 없어질 몸은 남고 썩지 않는다는 마음은 썩어버린 악기.
악기는 고정된 세계의 현현이다. 주법은 이 현현을 허물어뜨리려 한다. 그러나 주법은 진동의 미세한 입자를 시간 속에 끼워 넣으며 악기의 경계와 세계의 경계를 건드릴 뿐인데 이 건드림, 이 건드림이 직조해내는 무늬, 진동의 미세한 입자들이 뿜어내는 숨과 그 숨의 웅숭그림이 천변만화해내는 세계,
나는 마음이 썩기를 원한다. 오로지 몸만 남아 채취되지 않기를, 기록되지 않기를, 문서의 바깥이기를.
이것이 마음의 역사다. 그 역사의 운명 속에 내 마음의 운명을 끼워 넣으려 하는 나는 언제나 몸이 아플 것이다.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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