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7년 8월 1일, 화요일.
플로브디프에서 출발한 버스는 밤새도록 달려, 아침 일찍 이스탄불에 닿았다.
7월과 유럽과 불가리아를 모두 뒤에 남겨두고, 터키 여행 시작.
가장 먼저 처리한 일은, 아침밥과 사프란볼루 행 버스 티켓.
수 십 개의 버스 회사가 경쟁하고 있는 터키는 굳이 예매가 필요없을 만큼
언제나 티켓을 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2016년 테러의 여파로 줄어든 관광객 덕분에 성수기에도 전혀 부대끼지 않음.
그래도 문제를 지워버리고자 티켓을 사고, 아침을 먹고, 교통카드를 구입했다.
요게 이스탄불 내에서 사용되는 교통카드인 이스탄불 카르트.
지하철역 개찰구 앞에 있는 가게에서 구입할 수 있다.
카드 값이자 보증금 명목으로 6리라인가 7리라를 내야 하지만 근처 가게에
반납하면 돌려받을 수 있다고. 나는 모스크바 교통카드와 함께 기념품으로 챙겼다.
이스탄불 오토가르(버스 터미널)에서 시내까지는 거리가 꽤 있으니 교통카드는 필수.
시내 한복판에 거대하게 지어진 모스크만 봐도 터키에 온 실감이 든다.
여기쯤에서 심카드를 구입했다.
오토가르 근방에 가격을 물어보니 바가지가 너무 심해서 조금 나와서 삼.
터키에서 가장 큰 Tuckcell 회사의 8GB짜리 심카드가 80리라.
나중에 다니면서 보니 Vodafone 같은 업체에서 훨씬 저렴하게 팔더라.
데이터가 급한 분들이 아니면 시가지까지 나와서 사시길.
숙소를 관광지가 몰려있는 술탄 아흐메드 거리 근처에 잡고,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며 터키식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인도, 이집트와 맞먹는 삐끼와 호객행위의 나라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처음 만난 터키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길을 알려준다고 오거나, 한국인임을 듣고는 따봉을 날리거나.
이 카페의 주인도 아침을 먹다 말고 우리 커피를 내려주었다.
조용히 흐르는 이스탄불의 아침.
분위기에 취해 마음이 점점 쏠리는 것과는 별개로, 터키식 커피는 그리
입맛에 맞지는 않았다.
동남아에서 먹던 것보다 진한것도 아니고, 아래에 가루도 많이 깔려있고...
몇 군데에서 더 먹어보았지만, 내 결론은 이 커피 먹는 방식이 전세계로 퍼지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였다.
어쨌건 첫날은 여독을 풀고(불가리아-터키 국경 통과가 굉장히 빡셌다),
밥이나 해먹고 뒹굴거렸다.
그리고 다음날.
2017년 8월 2일, 수요일.
대부분의 관광지는 숙소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어
늦잠을 자고 천천히 길을 나섰다.
먼저 블루모스크 방향으로 이동.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콘스탄틴 오벨리스크이다.
10세기에 콘스탄티누스 7세에 의해 세워진 이 기둥은,
매우 오래되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그 뒤로 보이는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이스탄불에서 가장 오래된 오벨리스크인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는
무려 기원전 15세기(!) 이집트의 투트모시스 3세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4세기 경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이스탄불로 옮겨졌고,
그 과정에서 아래부분이 깨져 32m 중 위쪽 20m만 남아있다고 한다.
과연 이스탄불..
거기서 조금 더 걸으면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혹은 블루 모스크로 들어가는 문이
나온다. 현재도 종교시설로 사용되는 곳이라 입장료는 없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보이는 모습.
17세기 초에 지어진 푸른 타일의 건축물은
아침 햇살을 받아 예쁘게 빛난다.
이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는 옆에 있는 하기아 소피아에 비해 천 년이나 늦게
지어진 만큼 그 완성도가 뛰어나다.
원래 모스크의 첨탑은 4개가 최대인데 여기서 6개를 올려버리는 바람에
메카에 있는 모스크의 첨탑을 추가해야 했다는 얘기는 덤.
참고로 첨탑의 개수는 모스크를 건축한 사람을 나타내는데,
1개는 개인, 2개는 국가, 4개는 술탄이 지은 것이라고.
그러니까 첨탑의 개수가 많을수록 권력에 가까운 사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긴바지를 입고 왔기 때문에 입장에는 문제가 없었다.
여성들을 위한 스카프? 는 입구에서 무료로 대여해 주고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장이 걸려 입장 못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어찌됐건 위 사진이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의 내부.
이스탄불의 상징과도 같은 건축물이라 보통 성수기에는 미어터지는 관람객과
그 발냄새(...)로 구경이 힘들 정도라고 들었는데,
막상 와보니 줄도 서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여유있게 모스크 안쪽을 둘러볼 수 있었음.
둘러본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신자가 아닌 관광객은 입장 범위가 제한된다.
무슬림들이 기도하는 공간 뒤쪽에 서서 잠시 바라보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듯.
엄숙해 보이는 공간과는 다르게 아이들에게는 관대한지,
뛰어다니거나 누워 자고있는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출구 쪽 건물벽.
출구를 따라 쭉 나오면 보이는 모습.
생각보다 사진 찍을 각이 잘 잡히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거대한 모스크.
뒤편으로 나오면 술탄 아흐메드 공원이 바로 나오고,
왼쪽에는 술탄 아흐메드의 무덤이 있다.
아, 앞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 같은데, 술탄 아흐메드 1세는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를
건축한 인물이다.
멀찌감치 보이기 시작하는 하기아 소피아.
아야 소피아라고도 불리는 이 사원은 이스탄불로 천도한 로마의 황제이자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의 이름을 따온 소피아 왕녀의 아버지 콘스탄티누스 대제,
그 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가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기아 소피아라는 단어의 뜻은 '성스러운 지혜', 예수를 아는 지혜를 뜻한다.
거기에 시간이 더해지며 지금은 예수 자체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 후 몇 번의 소실과 재건, 개축에 이어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모스크로 개조된 뒤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분홍분홍한 건물이 파란 하늘 아래서 더 예쁘다.
이 곳도 다른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줄이 거의 없다.
성수기에 이정도면 여름 지나는 순간 파리날릴 듯.
아야 소피아는 사원이 아닌 박물관이라 입장료가 있다.
우리는 85리라짜리 뮤지엄 패스를 구입.
26000원정도 하는 가격에 5일동안 사용할 수 있고, 입장 가능한 십여 개의
박물관 중 세 개만 들어가도 본전은 뽑고 시작하니 당연히 구입하는 게 합리적이다.
거기에 더해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뮤지엄 패스 입장 라인이 따로 있지만,
우리 여행 한정으로 그건 의미가 없었다.
이 뮤지엄 패스에 관한 글은 하나 따로 쓰고 싶...지만 기약은 없다.
입구가 있는 측면 사진.
박물관 내부는 어째 소란스러운 느낌이 든다.
사람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부 복원 공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교회 성당에 이슬람 문양이 덧씌워진 부조화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일거다.
일단은 입구쪽 사진.
성당으로 이용되던 시절 쓰이던 종인듯.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 빌릴까 했으나 한국어가 없어서 빌리지 않았다.
역대 동로마 황제들이 대관식을 거행했던 옴팔리온.
직역하면 배꼽이라는 뜻으로 세계의 중심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건축가가 아닌 물리학자와 수학자가 설계했다는 돔 한가운데는
원래 예수의 초상화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코란의 문구로 덮여있음.
왼쪽 아래부분에 보이는 것은 여섯개의 날개를 가진 천사, 세라핌이다.
잘 보면 얼굴이 가려져 있는데, 19세기 복구공사 과정에서 별로 덮어버린 결과이다.
아, 그리고 돔을 둘러싼 창문들에 관해서.
성당을 처음 지을 당시엔 유리가 흔하지 않아 대리석을 얇게 깎아 투조판을 만들어
끼워넣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저게 다 얇에 저민(?) 대리석 판들.
나름대로 사진을 열심히 찍어 합쳤는데, 정작 중요한 돔부분을 놓쳤다.
얼굴이 제대로 붙어있는 천사는 복구과정에서 새로 그려넣은 것.
코란이 쓰여진 돔 아래로 천사가 있고,
성 모자의 모자이크 둘레에는 알라와 무함마드, 그리고 그 후계자들의 이름이
쓰여진 서예 원판이 둘러져 있다.
거대하고, 묘하면서도, 잘 어울린다.
성 모자의 모자이크 아래에는 금빛 찬란한 미흐랍이 놓여져 있다.
언제나 메카의 방향을 향해야 하는 미흐랍의 성격 덕에,
건물 전체적으로 보면 약간 엇나간 자리에 위치한다.
다른 각도에서.
나는 이 건물이 그야말로 마음에 쏙 들었는데,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천장을 구경했다.
이곳에 위치한 서예 원판은 현존하는 이슬람 서예 원판 중 가장 크다고 한다.
여담으로, 우경화가 진행되는 터키에서는 이 건물을 다시 모스크로 환원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작지만) 있다고 한다. 천 여 명이 모여 시위도 하고 한다고.
오스만 제국에서 회칠해 모스크로 만든 이 곳을 여기까지 복구하는 데에
터키의 돈이 한 푼도 쓰이지 않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완전히 모스크로 다시 바꿔버리면 관광객이 오긴 오려나...
먹고살기 힘들고 부의 재분배가 원하는 만큼 일어나지 않아 힘든 세상은
앞뒤가 꽉 막힌 우경화를 가져온다.
건물의 불완전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오래 하기아 소피아가 살아남는 데에는
건축 자재의 우수함도 한 몫 한다고 한다.
탄산염이 풍부한 로도스 섬의 점토와 중세 유럽에선 사멸해버린 로마의 콘크리트.
완벽한 물리 계산이 불가능해 발생한 구조의 문제와,
빠르게 건축하느라 시멘트를 충분히 굳히지 못해 발생한 뒤틀림을
처음 사용된 건축자재와 이후의 개보수 공사를 통해 해결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끔씩 밀려들어오는 단체 관광객을 제외하면 한산한 분위기다.
청동으로 둘러싸여 물이 맺히는 기둥.
구멍에 엄지를 넣고 한바퀴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기둥.
중국 관광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이 기둥은 슬쩍만 보고 지나쳤다.
이층으로 가는 길.
덥고 습해 죽겠는데 왜이렇게 길어..
이층에는 회칠에서 복원된 모자이크 몇 점이 있다.
좌우에 성모와 세례자 요한을 거느린 예수.
유난히 훼손상태가 심하다.
그런데 요 모자이크들을 복원하려면 회칠과 그 위에 덮인 이슬람 문양들을
제거해야 한다.
때문에 이슬람 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현재 회칠 제거 및 복원은 중단된 상태.
이층에 올라와 보니 건물의 웅장함이 새삼스럽다.
4차 십자군 당시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던 엔리코 단돌로의 무덤터.
무자비하게 도시를 약탈해 십자가 든 악마라고 불리던 4차 십자군은
하기아 소피아에 이런 흔적을 남겨뒀다.
정확하게는 이 명패는 19세기 이탈리아 측에서 무덤터에 비석만 하나 놓은 것으로,
실제 대리석 무덤과 시신은 투르크인들이 콘스탄티노플을 재탈환 했을 때
파헤쳐 졌다고 한다. 시신은 개들한테 던져줬다고(...).
그리고 2층 끝부분에 위치한 조이 여제의 모자이크.
물론 오른쪽이 조이 여제이며, 오른편은 남편 콘스탄티누스 9세.
재밌는 점은 조이 여제의 남편이 바뀔 때마다 왼쪽의 얼굴과 문구도 같이 바뀌었다는 점.
총 세 번 결혼했으니 그만큼 얼굴과 문구가 고쳐졌다고.
2층에서 본 회랑의 모습. 이 규모를 한 번에 담지 못하는게 아쉽다.
출구로 나와서 이번엔 왕궁으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섰다.
하기아 소피아의 정면 사진.
날이 정말 좋다.
사진 양의 압박으로 아야 이리니와 왕궁은 다음글로!
+추가) 이스탄불의 옛 이름 콘스탄티노플은 원래 이름이 아니라 별칭이었다고 한다.
원래 이름이 뭐였는지는 내가 하고싶은 말이 아니고,
워낙에 번성하고 거대한 도시 콘스탄티노플은 그 위세가 대단했다.
어느정도였냐면 당시 번성하던 데살로니키(성경에 나오는)도 이 곳에 비하면
시골이라고 했을 정도.
그래서 그리스 인들은 이 도시를 그냥 'η Πολή (이 뽈리)'라고 아직도 부르고 있는데,
직역하면 'The City'라는 뜻이다.
조선의 수도에 한양이라는 이름이 있음에도 서울이라는 단어로 불러왔던 것과 마찬가지인데,
콘스탄티노플의 위상이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현재의 이름인 이스탄불의 뜻도 '도시에서', '도시로' 이런 의미라고 한다.
'세계일주 > 터키,요르단,이집트(2017. 8. 1 - 11. 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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