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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정직하다.


걸은 만큼, 올라간 만큼만 멀리 많이 보이며 보인 만큼만 즐길 수 있고,


본 만큼만 알게 된다.


고작 3박 4일짜리 트레킹으로 갑자기 산 사람이 된 것 같은 표현은 조금 낯간지럽지만,


실제 내 기분이 그랬다.


2017년 12월 3일에서 6일, 이번여행 뿐 아니라 어쩌면 내 인생 최고의 순간.




아침 일찍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위에서 카우보이를 만났다.


말 그대로 카우보이와 소떼를 몰고 있는 개들. 목가라는 표현은 이 때를 위해 있는지 모른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국립공원까지는 인당 15000칠레페소가 든다.



잠들 틈이 없이 펼쳐지는 지구의 최남단, 파타고니아의 풍경.


남극 대륙과 몇몇 섬들을 제외하고는 가장 남쪽에 위치한 곳이 바로 이 파타고니아 지역이다.


아직 적지 않은 것 같은데, 파타고니아(Patagonia)라는 단어는 파타곤(Patagón)에서 유래했다.


1520년 마젤란이 후에 그의 이름을 따게 될 해협을 발견하게 된 세계일주 항해에서


이 지역에 찍힌 큰 발자국을 보고, 혹은 자신들에 비해 키가 큰 거인들을 보고 파타곤(Patagón)이라 이름붙인다.


스페인어로 Pata는 발이다. 손 발 할때 그 발.


하지만 뒤에 붙은 -gón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당시부터 파타고니아(Patagonia)하면 "Land of the Bigfeet"이라고 받아들였단다.


그게 뭔소리야? 하고 좀 더 파고 들어가 보면 이 단어의 어원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를 하나 알게 되는데,


아르헨티나의 예술가(!) 미구엘 도우라(Miguel Doura, 1962-)의 가설에 따르면


파타고니아의 어원이 고대 그리스어에서 바로 파생되어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적어보자면, 현재는 터키의 영토인, 흑해 연안의 고대 그리스 영토 중 파플라고니아(Paflagonia)라는 곳이 있었고


그 지명이 1512년, 그러니까 마젤란이 항해를 시작하기 대략 10년 쯤 전에 


스페인에서 출간된 일종의 기사문학(Chivalric romance)중 하나인 프리말레온(Primaleón)에 등장한다고 한다.


즉,  파플라고니아(Paflagonia)에 대해 알고 있던 마젤란이 단어의 앞부분 Pafla를 Pata로 교체해


이름을 붙인게 아닐까 하는게 미구엘 도우라의 학설.


참고의 참고로 적자면, 파플라고니아(Paflagonia)라는 지명은 그리스 신화의 등장 인물 파플라곤(Paphlagon)에서 따왔다고.


어쨌건 위의 이야기는 그냥 썰이 아니라 2011년에 정식으로 출판이 되었고, 가설 중 하나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근데 마젤란은 포르투갈 출신인데? 귀화했으니 넘어가자.


한 줄 요약:


파플라곤(Paphlagon) - 파플라고니아(Paflagonia) - 파타고니아(Patagonia)



갑자기 파타고니아에 대한 애정이 샘솟아 딴소리를 했다.


풍경을 즐기다 보면 버스는 우리를 이런 매표소 앞에 내려준다.



줄이 길어 걱정이 되지만, 버스는 우리 모두를 기다려주니까 걱정 뚝.



공원 입장료는 인당 21000페소. 구입시 여권이 필요하며 이후 짧은 교육용 동영상을 본다.


그 다음은 트레킹 루트에 따라 선택지가 갈리는데,



동쪽에서 트레킹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호텔로 가는 셔틀버스를(1번),


서쪽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은 페리를 타고 파이네그란데 산장으로(2번) 이동해야 한다.


어느쪽이건 버스는 무료.



선착장 시간표. 열한시 배를 타야한다.



선착장 가는 길.


짊어진 배낭엔 2인용 텐트와 침낭 세 개, 각종 간식들이 들어있다.




파이네그란데 산장으로 가는 페리 티켓은 일인당 18000페소.



이 거리를 가려고 18000페소를!? 싶은 시간이 지나면 반대편에 도착한다.


페리로 호수를 건너는 동안 앞으로 걸어야 할 길에 대한 스포일러를 많이 당하는데,


쫄 거 없다.



그리고 도착한 산 아래 캠핑장.


벌써 두근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간단한 체크인 절차를 마치면 위와 같은 스티커를 적어준다.


따로 자리가 지정되는 건 아니고 정해진 공간 안에 마음껏 텐트를 설치하면 된다.



완료.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대여해 주는 장비들은 아무래도 사용감이 있으나


기본적인 기능에 하자는 없었다.



나름대로 바람을 막아보겠다고 구석진 곳에 텐트를 펴서 무난하게 지냈다.



파이네그란데 캠핑장의 전경.


사진을 순서대로 보면 알겠지만 날씨가 정말 변화무쌍하다.


막 체크인 하던 순간에는 맑았다가 지금은 또 구름,



엄청 흐리고 바람이 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 무지개를 띄우는 게 이곳의 날씨다.


과연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날씨가 변한다는 파타고니아, 그 중에서도 최남부 토레스 델 파이네다.



밥은 다녀와서 먹기로 하고 우선 그레이빙하까지 트레킹을 즐기기로 한다.


출발하는 데 캠핑장에 출몰한 여우(?)



여유 터지게 캠핑장을 누비며 음식을 찾는다.






이것이 대자연인가! 하기엔 사람이 흘린거 주워먹는 폼이 이미 자본주의 맛을 단단히 봤다.



어쨌건 트레킹에 나선다.


그레이빙하 전망대 까지는 왕복 네 시간 정도.


그레이 산장까지는 그 두 배가 소요된다고 한다.


그리고, 생전 처음 등산스틱의 맛을 본 높의 말에 의하면


스틱이 있고 없고가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하니,


가능하면 빌리는 편이 낫다.



트레킹 코스 곳곳에는 이렇게 칠해진 돌이나 나무들이 있어서


얘들만 따라가면 길잃을 염려는 없다.


가끔 헷갈리는 길이 있으니 주의.



그레이 산장까지 가지 않고 전망대까지만 가도 빙하 보이는 건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후의 일정이 얼마나 빡셀지 모르기 때문에 우린 전망대까지만 다녀옴.



걸음이 빠른 편이라 한 시간 삼십 분 정도만에 도착.



간식을 하나 까먹고 빙하를 구경한다.





다녀와서는 늦은 점심으로 준비해 온 참치주먹밥과 치킨너겟.



잠시 누워서 쉬다가



라면스프+소세지 죽에



와인 한 잔.



봄이라지만 밤에는 춥고 비가 내린다.


우리는 대여샵에서 빌린 겨울침낭과 들고다니던 봄가을용 침낭을


겹쳐서 썼는데, 따뜻포근 했다.



다음 날은 시작부터 바람이 강했다. 수염이 휘날렸다.



그래도 신나서 걷고



쉬고



물을 떠서 마시기도 하고





다리도 건너며 걷다보면 



이탈리아노 무료 캠핑장에 도착한다.


부지런히 걸으면 여기까지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 소요.


중간에 흐르는 물을 그대로 받는 사진이 있었는데,


청정지역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선 산에서 흐르는 물을 그대로 마셔도 된다.


물병 필수.



수제(?) 날씨 알림판 아래에 배낭을 풀어놓고 빙하를 보러.


국립공원 한가운데인데다 무거운 가방은 피차 짐이라서 그런지,


도둑질에 대한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프란세스 빙하를 보러 가는 길은 무척 험하다.


잘 정비된 트레킹 코스가 아니라 바위가 깔린 길을 넘어다녀야 하는 거라


무릎이나 발목에 부담이 된다.


그리고 저 표지판에 써 있는 Usted está aquí.


영어로 You are here. 라는 뜻인데, 가면 갈수록 나를 놀리는 기분이 들어


참을수가 없어진다. 아래 그려진 오리까지 나를 비웃는 듯한 피해망상이 들면


당신도 어엿한 트레킹 매니아!



모레노 빙하를 본 이후엔 그냥 응 이것도 빙하구나 하는 느낌정도.


날이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는 더이상 나에게 혼란을 주지 않는다.





이탈리아노로 다시 내려와 오늘의 목적지 프란세스 캠핑장으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간식을 먹고



소세지까지 야무지게 삶아서 와인을 한 잔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간식은 조금 많다 싶을 정도로 가져오는게 좋다.


몸이 힘드니까 단게 자꾸자꾸 땡긴다!




프란세스 캠핑장에서 토레스 센트럴 캠핑장으로 가는 길은


3박 4일 트레킹 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다리도 건너고



호숫가도 만나고



오늘의 간식과



말 그대로 얼음장같은 물을 맨발로 건너기도 하다 보면



꽃길도 나오고



언덕도 나오고



마침내 들판이 나오면



센트럴 캠핑장에 도착한다.


텐트만 칠 자리는 남는 곳이 없어서 미리 세팅된 텐트 자리를 빌렸다.


여기서 우리와 비슷하게 진행하는 분들이 알아두셔야 할 팁이 있는데,


센트럴 캠핑장의 체크아웃 시간은 오전 8시이다.


하지만 삼봉에서의 일출을 보고 내려오면 아무리 빨라도 9시가 되는데,


그렇다고 짐을 다 싸들고 새벽 산행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땐, 캠핑장 건너편에 보이는 호텔? 혹은 웰컴센터?에 가면


무료로 짐 보관을 해준다.


그러니까 전 날 저녁에 꼭 필요한 짐을 제외하고는 미리 가방을 싸서


센터에 맞겨두고, 삼봉을 보고 내려와 그대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러 가면 된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4시간도 못잔 우리는 새벽 1시에 일어나 길을 나섰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4시간 여를 올라 삼봉에 도착.


한 치 앞도 안보이는 산행은 무섭고 조금 위험했다.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너무 빨리 도착했다는 것.


일출까지 30분이 넘게 남은 시간을 칼바람이 부는 산 정상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결국 이 좋은 날씨에 붉게 타오르는 삼봉을 보지 못하고 하산.


다시 센트럴 캠핑장 근처까지 돌아오니 여덟시 반 쯤이었다.


왕복 일곱시간 정도 걸린 셈인데, 내려오는 시간을 좀 더 잡는게 좋다.


W트레킹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다만 한 번 더 기회를 만들어 일주일 이상 이 국립공원에 나를 맡겨보고 싶을 뿐.


3박 4일간의 전체적인 감상을 짧게 적고 글을 마쳐야겠다.


가장 처음으로 느낀 건 내가 여지껏 눈을 뜨고 있다는 착각속에 살았다는 것,


나의 작음을 느끼기 위해 우주를 올려다 볼 것 까지도 없다는 것.


꽃밭에서 썩어가는 동물 시체와


결코 녹지 않을 듯 보이는 산봉우리,


하늘 색으로 빛나는 호수까지.


아름답다는 표현을 좀 더 아껴두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가득한 시간 이었다.


아래는 글이 너무 길어져 뒤로 밀어둔 풍경 사진들.


정말, 정말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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