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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9일, 목요일.


어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마쳤다.


성베드로대성당이 문을 여는 시간은 오전 일곱시.


아침도 거르고 일어나서 눈만 비빈 채로,


여섯시 사십분에 대성당 앞에 도착했다.



떠오르기 시작하는 해가 성당 정면에 반사된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이 눈에 띈다.


대성당의 돔은 정작 광장에선 잘 볼 수가 없는데,


수많은 건축가가 설계를 변경하면서 생긴 참사라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성당의 평면 구조가 그리스 십자가에서 라틴 십자가로 바뀌면서


벌어진 일이라는데, 쉽게 말하면 정사각형 모양 병원 십자가에서


교회 십자가 모양으로 바뀌느라 앞뒤가 길어졌기 때문.


덕분에 


"미켈란젤로의 돔은 대성당 정면을 제외한 로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는 비아냥을 건축 당시부터 지금까지 들어먹고 있다고 한다.


바닥에서부터 십자가 끝까지 높이가 무려 136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돔을


광장에서는 볼 수 없다니.



조금 더 가까이 접근.


오벨리스크 뒤편으로 예수의 제자들 석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펜스 뒤편에서 찍은 광장의 모습.


과연 아침에 깨어나는 성당은 빛이 난다.


그런데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펜스 앞에서 뭔가 행사가 열리는듯 하다.


꽃으로 바닥을 장식하는 등 분주한 시민들의 모습.


물건을 팔라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복선3)



어찌됐든 여섯시 오십분 쯤에는 줄에 들어왔다.


이정도면 선방한듯 해 뿌듯하다.


게다가 옆으로 펜스까지 있어 새치기가 심각한 수준으로는 발생하지 않음.


이정도만 관리해줘도 되잖아요......



잠시 기다리다 빠르게 입장했다.


스위스 근위대를 보다니! 흥분해서 사진을 이상하게 찍음.


세상에서 가장 작고,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용감한 군대.


예쁜 옷 안에는 항상 방탄복을 입으며, 각종 개인화기도 소장하고 있는


보기보다 무서운 군대.



자연스럽게 인도해 주는 경로를 따라 성전 앞을 지나서



교황님이 이름이 아래에 적힌 책자를 받아서..... 어?



...어?



교황 성하...?


우리 어제 만났잖아요 그런데 또 왜....?


사실은 이랬다:


매년 6월 29일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로, 이탈리아의 공휴일이자


로마 가톨릭의 가장 큰 축일 중 하나이다.


그래서 이 주에 있는 모든 미사는 교황님이 집전하며,


29일 당일은 역시 교황님이 집전하는 대축일 특별미사가 열리는 것.



아무것도 모르고 가라는대로 가다 보니 엄청나게 앞에 앉았다.



딱 이런 표정으로.


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광장 한복판에서.


물 한 병 없이.



그러거나 말거나 미사는 진행된다.



이탈리아어 뿐 아니라 영어, 에스파뇰, 중국어까지 사용되는 미사를


그래도 성실하게 따라했다.


그래도 성만찬? 성찬? 에는 참여 안함. 저 세례를 안받아서....



칼과 성경을 들고있는 사도 바오로와



열쇠를 들고있는 초대 교황이자 예수의 열두 사도의 리더 베드로.


베드로가 들고있는 두루마리에는 예수가 베드로에게 했던 말인


"내가 천국 열쇠를 내게 주겠다"


가 새겨져 있다.


이 두 사람의 축일이 같은 이유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1. 순교한 날짜가 같다.


2. 유해를 옮겨온 날짜가 같다.


어떤 이유에서건 유대인을 위한 사도와 이방인을 위한 사도의 축일이 같다는 것은


적어도 기독교인 가정에서 자란 내겐 퍽 의미심장했다.


여기서 문제!



대성당의 정면에는 가운데의 6미터의 거구 예수를 중심으로 사람이 열 두명 배치되어 있다.


물론 각각 상징물을 보면 아는 사람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음.


그러면 베드로는 저 위에도 있고 앞에도 있을까?


만약 아니라면, 그럼 저 열두명 중에 혼자 다른 한 명은 누구일까?


정답:


베드로는 광장에만 있으며, 예수 왼 편의 인물은 세례자 요한이다.


뭐 아무튼 평생 인연이 없을거라 생각했던 교황님을


이틀 연속 뵙은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강론하시는 말씀도 책자에 번역이 되어있어서(물론 영어) 심카드도 와이파이도


없는 나는 열심히 읽었다.


오고싶어도 오지 못하는 신자들이 대부분일텐데 나라도 깝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야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심각하게 힘든점이 하나 있었는데,



요런 하늘 아래 3시간 넘게 물 하나 없이 앉아있어야 했다는 것.


그래도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큼직큼직한 구름들이 지나며 해를 가려주면


교황님 은혜다 생각하며 쉬었다.



미사가 끝나고 나가는 길.


11시가 좀 지나 미사는 끝났지만,


교황님은 탈것(?)에 오르셔서 한동안 카 퍼레이드(?)를 하시며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 가까이에 계셨다.


그동안 어마어마하게 큰 중국 국기를 포함한 각 나라의 국기를 챙겨온


신자들이 열심히 흔들어대는 것은 사진 찍는 걸 까먹을 정도로 장관.



수녀님들도 퇴근하신다.


교황님의 팬서비스는 꽤 대단해서,


카 퍼레이드를 한참 하시고는 들어간 직후 교황궁 창문에 모습을 드러내시고는


한동안 말씀을 계속 하셨다.


게다가 원래 오후 2시에 개방하기로 한 성당 내부를


말씀이 끝난 직후 개방해 주는 어마어마한 센스까지!


덕분에 목마른 우리는 두시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광장은 어제 대강 적었으니 바로 내부로!


아, 대성당에 입장하는 동안 직원? 관리인? 들이 복장검사를 꽤 꼼꼼히 한다.


한번 통과했다고 끝이 아니라 열댓명이 성당 입구와 내부를 돌며


부적절한 복장을 입은 사람을 얄짤없이 내보내기 때문에,


옷에 신중해야 한다.



문을 통과하면 바로 어마어마하게 넓은 성당 내부가 펼쳐진다.


가운데의 길은 교황만 사용하는 길인가...?


누군가가 이 성당을 두고 실내가 맞기는 한건지 의심이 든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다.



입구 바로 오른쪽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놓여져 있다.


1972년 헝가리계 호주인 정신병자의 난입으로 성모의 왼팔과 코가 부러지는


사건을 겪은 이후,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미술작품.


이 것의 레플리카를 서울의 전시회장에서 본 일이 있다.


워낙 회화보다 조각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피에타에 완전히 사로잡혀


그 주변을 뱅뱅 돌면서 한참 시간을 보냈던 기억.


미켈란젤로 피에타의 아름다움과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내가 가장 끌리는 부분은 그 특유의 과장이다.


확연히 젊어보이는 성모, 예수보다 훨씬 키가 큰 성모, 실제보다 과장된 근육.


그리고 가로폭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얇은 세로축 등.


더 자연스럽고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구도를 위해 현실을 살짝 수정하는 대담함.


그냥 눈으로 볼 때는 그런 과장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만든 치밀함.


자연보다 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린다는 점에서,


그의 조각은 내가 또한 사랑하는 신고전주의 회화와 닮은 점이 많다.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구경했던 레플리카와 차이점을 잘 느끼진 못했지만,


결국 여기까지 와서 이 작품 앞에 서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감격이었다.


2017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


이 여행 중에서도 잊지못할 하루가 될 것이다.



피에타 경당을 제외하고도 매우 많은 경당이 있고, 각각의 장소에서


신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이 그림은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인듯.



내가 보고 또보고 하니까 높은 입구로 먼저 나가 기다림.



성 베드로 청동상.


평소엔 아무것도 걸쳐져 있지 않지만,


성 베드로 축일에는 금실로 수놓은 옷과 교황관을 씌운 후 미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이 중앙부로는 오늘 입장이 금지되어 있어서 더 가까이에선 보지 못했지만


이틀동안 개고생하고 대성당에 들어와 흔히 못보는 광경을 보고 마음이 녹음.


하지만 돔 아래부분과 기둥에 새겨진 장식들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아쉬운대로 최대한 가까이에서 사진이라도.


이 돔을 빙 둘러싼 라틴어는 그 유명한 구절,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는 구절이다.



돔 아래 지하층에는 베드로의 무덤을 비롯한 역대 교황들의 무덤이 있다.


당연히 전부 있는 것은 아니고, 이전하고 재건축 하고 하면서 많이 소실됐다고.


사진은 금지라 찍지 않았다.



X자 십자가를 등에 멘 것이 사도 안드레아 같지만, 정확히는 모른다.



조각 작품들 하나하나 감상하다 보면 시간이 쭉쭉 흐른다.



교황의 제대가 놓여진 발다키노.


베르니니가 디자인한 이 발다키노는 위태해 보일 정도로 기둥이 얇은 것이 특징이다.


이는 미사를 집전하는 교황의 시야를 가리지 않기 위함이라는데,


덕분에 하중을 많이 견디지 못해 원래 꼭대기에 올리려던 성상을 올리지 못했다고.


대신 십자가가 달린 구형의 장식품을 달았단다.



내부를 구경하고 나와 출구에서 바라본 성베드로 광장.



뒤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성상.




돌아가기 전에 피에타를 한 번 더 보고싶어 다시 들어갔다 왔다.


구경을 완전히 끝내고 나오니 오후 두 시쯤.


원래는 그간 보지 못한 로마의 자잘한 분수들과 야경까지 볼 계획이었으나,


뜻하지 않던 뙤약볕 미사 참석으로 우리는 로마 여행을 여기서 마무리짓기로 했다.


성베드로 대성당은, 무리를 해서라도 한번 와볼만한 가치가 있다.


로마?


로마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굳이 또 오고싶지는 않다.


로마여행 끝!


이탈리아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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