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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모든 것 / 황인찬

Vagabund.Gni 2023. 9. 1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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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펼치면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 그게 참 재미있다 서로 사랑하기도 하고 개를 끌고 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세상을 구하거나 끝낼 때도 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그게 진짜는 아니라는 것

 

    이것은 네가 쓴 책의 부분이다

 

    하늘이 푸른데 하늘이 푸르다고 책에 쓰여 있다 마음이 무너졌는데 슬픔에 빠져 매일 술에 취해 있다고 쓰여있다 내 영혼의 불꽃, 그렇게 쓰여 있다 눈밭 위의 고독이라고도 쓰여있다 너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책에 있는 것

 

    멀리 지나가는 새들의 이름이 책에 있다 새의 모양과 생활사도 있다 책을 덮으면 새를 무서워하는 네가 있고 흘러가는 시간이 있고 새가 지나갔으나 보이지 않는 궤적이 있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모르는 것

 

    너는 사람들이 잠들면

    아주 큰 책이 나타나 모든 것을 덮기 시작한다고 썼다

 

    책의 그림자가 모든 것에 드리워 밤이 깊어지면 모두가 이름을 갖게 되고, 모두가 하나의 책에 들어가게 되고, 아주 큰 책은 더 큰 책이 된다고도 썼다

 

    새 한 마리가 우리 머리 위를 맴돌다 떠나간다

    내가 아는 것은 그 새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

 

    새가 울면 아침이 온다 아침이 오면 책이 펼쳐진다 책을 펼치면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겠지 더 큰 책 안에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것을 내가 알고 있었다 그게 참 이상했다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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