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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감나무에는 아기 머리통만한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누가 키웠을까 사람도 살지 않는데 산책하다 무심코 한 말에 저걸 누가 키워 알아서 자라는 거지 그가 말했습니다

 

담장 위로 나란히 앉은 새들은 정답게 울고 겨울을 맞아 잔뜩 털이 올랐네요

과연 그렇군요 다 알아서 자라는 것이군요

 

언덕길 경사를 따라 햇빛 떨어지는 오래된 동네

새들이 햇살 아래 자주 웃고 떠든다는 생각

 

살기 좋은 동네 같아, 그것은 우리가 이곳에 떠밀려오던 날, 이삿짐을 풀며 그가 했던 말

 

그런 말을 듣고 보면

왠지 정말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지요

 

인적 없는 집에도 감은 열리고

삶도 사랑도 그렇게 근거 없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내일은 오고

때때로 눈도 비도 내리겠지요

 

우리는 이 동네로 떠밀려왔고, 어느새 짐을 풀고 있었을 뿐이지만

 

깨어도 꿈결 속아도 꿈결

꿈이 아니라는 것이 정말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우리가 늙었을 때,

조용하고 아름다운 이 동네에서 곱게 늙은 두 노인이 되었을 때

 

심지도 거두지도 않고, 누구에게 해 끼치는 일도 없이 계속되어온 그저 선량한 우리 삶이 마무리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의 마음이 깊어지는 가을

 

밤마다 옆집에서는 잘 익은 감들이 하나둘 떨어졌고

그때마다 사람 머리통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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