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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은 아쉬운대로 시내 구경을 마치고 숙소에서 영화를 하나 보고 잠들었다.


저녁을 먹을 때 쯤 부터 시작한 눈이 그 다음 날 하루종일 내릴거라곤 생각 못했지.


아침에 일어나니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우리가 머문 아파트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아, 오늘 밖에 나가기는 글렀구나.


누구도 말은 안했지만 그렇게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해서 그렇게 피곤한 상태는 아니었음에도 하루를 휴일로 잡고


뒹굴거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음식이었다.


당연히 시내를 나갈거라 생각해서 어제 저녁거리 정도만 사왔으니까.


시내구경 못하는 건 괜찮아도 굶는 건 참을 수 없어,


눈발이 약해진 틈을 타 호스트의 추천 맛집 베이커리를 향해 출발했다.



빵 사러 가는 길..


여전히 눈은 내리고 쌓이고 발에 밟혀 뽀드득 소리를 낸다.


예상치도 못한 폭설이었어도,


4월에 눈을 맞으며 밟으며 걸을 수 있어 기분은 좋았다.


한국은 벚꽃이 한창이라지.........................



호스트 아주머니가 자신있게 약도까지 그려준 빵집 답게


많은 종류의 맛있어 보이는 빵들이 있었다.


게다가 가격이 저렴해...


눈발이 굵어질까 다급한 우리는 파는 빵 중에 거의 절반정도를 빠르게 담았다.



옆 라인에는 도넛도 있고,


오른쪽 아래에 보면 숙성시킨 밀가루반죽을 팔고 있다.


역시 빵과 설탕의 나라...


초콜렛 발린 도넛이 맛있어 보여서 하나 집어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묘하게 어린시절이 떠오르는 풍경이다.


아파트도 낡고, 놀이터도 낡아서 그런가.


아니면 미세먼지 없는 공기냄새 때문인가.



어제만 해도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던 놀이터가 텅 비었다.


눈을 밟는게 좋아서 일부러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갔다.


뒤에 보이는 아파트가 우리가 머문 곳이다.


겉모습만 봐도 매우 낡았고, 건물 안쪽 복도도 매우 그로테스크 하지만


방 자체는 관리가 잘 되어있어 따뜻하고 깨끗했다.


게다가 와이파이도 매우 빨라서 무한도전을 볼 수 있었다!!!



비둘기 발자국... 지금 보니까 좀 끔찍하다.


러샤 사람들은 빵쪼가리를 비둘기한테 자주 던져준다.


우리나라에선 하지말라는 현수막까지 붙어있는 행위인데...


러시아 비둘기라고 더 깨끗할 것 같지는 않으니 일단 피해서 걷는다.



강아지 발자국. 가만 생각 해보면 러시아는 반려동물 대국이다.


아무리 작은 마트에 들어가도 당당히 강아지 고양이 간식을 판다.


그리고 산책하는 사람이 강아지를 데리고 있을 확률이 서울에 비해 매우 높다.


다니다 보면 동물병원도 많이 보이고..


내새끼들 보고싶다.



해서 올려보는 어제 마주친 길냥이들.


보이는 문이 우리 아파트로 들어가는 대문이다.


이녀석들 사람손좀 탔는지 전혀 도망가지 않고 비벼댄다.


러시아 사람들은 길냥이에게도 친절한 것인가!


바이칼 호수에서 만났던 녀석도 딱 달라붙더니!


이런 츤데레 불곰국 형 누님들....ㅠ


사실 저 녀석 중 한녀석이 아파트 건물 안까지 따라들어와서 진땀좀 뺐다.


잘하면 집까지 들어올 기세라서 계단으로 도망쳐 올라옴 ㅋㅋㅋ


어찌됐건 눈은 그칠 기색이 안보이고,


우리는 사온 빵들로 아점을 차려먹었다.



먹다 남은 쿠키와 달걀, 베이컨과 샐러드까지 같이 먹으니 그럴듯 하다.


지지와 세모는 슬슬 세탁할 때가 되어간다...


사진에 보이는 빵 전부 합쳐도 한국 돈 3,000원수준이다.


그런데 맛있어...! 이 동네의 자부심인가 보다. 손님도 엄청 많더니.


나름 기분낸다고 얼그레이 밀크티까지 만들어 먹었다.


호스트 아주머니가 취향이 고급지신지 찬장에 디캔더와 티트레이 와인잔 등


없는게 없었다.. 이럴 때 위스키를 한잔 했어야 하는것인데..


아무튼 급할 것 없는 우리는 빵을 하나하나 먹어나갔다.



그 와중에 신기한 빵 하나.


빵으로 만든 만두피 안에 볶은 채소와 연어(?)가 들어있다...!


단어를 조합 해보면 매우 비릴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하나 더 먹고싶은 맛.


이래서 동네빵집, 동네빵집 하는구나.


빵을 너무 많이사와서 다 못먹고 남겼다. 간식이 생겼으니 이득.



창 밖을 보니 눈은 잠시 소강상태.


하얗게 덮힌 지붕에서 쌓인 눈이 미끄러지는 풍경을 한동안 구경했다.


그렇게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드라마도 하나 보고 시간을 보내다


창가를 보니 그래도 낮이라고 밝아지긴 했다.


우리가 머물렀던 에어비앤비 숙소는 테라스 공간이 있었는데,



분위기 장난 아니다.


나무로 된 창틀과 벽과 바닥과..


가장 놀라운 것은 춥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따듯한 정도는 아니었고 그냥 좀 포근한? 정도.


이런 풍경을 놓칠수가 없어서 홍차를 한잔 더 마시기로 했다.



위 사진에 보이는 의자에 앉아 찍은 풍경.


남은 쿠키와 착착과 홍차 한잔, 그리고 읽으려고 한국에서 챙겨온 책까지.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며 오후 티타임을 가지고 있으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나른한 기분에 차를 몇 잔이고 더 마셨다.


사실 큰 창가로 보이는 눈내리는 풍경에 매료되어서


중간부터는 책도 덮어버리고 하염없이 멍을 때렸다.


이렇게 죄책감 없이 멍때린 게 몇 년 만인지.


아침의 경험 때문인지 또 어릴 때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창 밖만 보다가 보니 어느새 저녁 어스름.



파란 시간엔 쌓인 눈도 푸르스름하게 빛을 낸다.


이쁘다 이뻐.


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가끔 강아지도 지나가고


더 가끔 사람도 지나간다.


조금 식상해도 여기선 이 시를 읽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이 유명한 시는 언제 읽어도 참...


가로등까지 하나 하나 눈을 뜨니


내가 무슨 산속에 요양을 와있는 것인가 착각도 좀 들었다.


길고 길었던 티타임을 끝낸 나는


모처럼 운동도 좀 하고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까지 했다.



목욕하고 나서는 아이스크림.


비싼 녀석으로 집어왔다. 우리돈 800원정도?



아이스크림이 실하게 들어있다.


아래 위를 감싼 과자가 맛이 좀 없어서 반감되었어도 좋은 간식이었다.



소낙눈.. 지금 그치는 것까진 안바래도


내일은 날이 좀 좋았으면 좋겠다.


이젠 또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사진은 어제 사놓은 맥주와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남겨 가져온 꼬냑.


유럽맥주의 저렴함에 눈이 돌아가서 너무 많이 집어와 아직 몇개 남았다.


저녁은 남는 빵, 그리고 우리의 구세주 러시아 라면과 만두, 


남은 베이컨을 넣고 끓인 러시아식 잡탕라면이었다.


아 이렇게 노는것도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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