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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시비르스크의 하늘은 떠나는 날까지 변덕스러웠다.


이른 아침에는 새파란 하늘로 늦잠을 방해하더니


이내 비가 내린다.


호스트의 배려로 오후 세시로 체크아웃 시간을 늦춰둔 나는


일어난 김에 몸을 움직여본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물을 마시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지루해져 아침을 차려먹었다.


잠깐 시간을 두고 창 밖을 보니 이제는 눈발이 날리고 있다.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날씨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짐을 챙기고 청소를 했다.




택시를 타고 기차역에 내렸을 땐 작은 사건이 있었다.


군복을 입은 경찰이 우리에게 신분증과 외국인등록증 등을 요구하며 다가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여권과 입국증명서와 하바롭스크에서 받았던 등록증을 내밀었다.


그 서류들을 못마땅하게 받아 나를 위아래로 훑는 것은 뭐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가 데리고 있던 거대한 경찰견이 높에게 짖으며 달려들려는 시늉을 한 것이다.


사냥개 수준의 덩치가 덤비려 하자 우리는 모두 놀랐고, 주인이 진정시켜 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 경찰은 여전한 낯으로 서류만 들여다 볼 뿐, 목줄을 쥔 손은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트집잡을 것이 없었는지 한마디 말도없이 내 여권을 돌려준 그는


이어서 지나가던 러시아 청년들을 붙잡고 신분증을 내놓으라 신경전을 벌인다.


아주 지랄을 하고 앉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그 감정은 이내 한심함으로 바뀌었고 나는 뒤돌아 역사로 향했다.


어딜가나 미친놈은 있다.


기분 상하면 나만 손해이다.


저새끼는 지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를테니까.




네 번째로 열차에 오른 우리는


이제는 익숙한 풍경 사이를 지난다.



오후 다섯시에 출발한 기차에 앉아 이른 저녁을 먹고 홍차를 한 잔 마신다.



주로 먹었던 과일과 빵, 삶은달걀과 케찹 마요네즈 딸기잼.


여기에 소시지와 오이까지 썰어넣으면 나도 어엿한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승객이다.



홍차 한잔 하면서 같이 먹은 쿠키. 이런 쿠키가 중간사이즈 한봉지에


우리돈 1,000원 정도 한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딸기잼을 바르면 더 맛있음.


음식 다음에는 잠을 보충한다.


어지간한 숙소 침대보다 열차 내부 침대가 더 좋다.



두어시간쯤 기분좋게 자고 내려와 앉는다. 


아직 우리는 우중충한 하늘을 떨치지 못했고, 곧 밤이다.



러시아를 가로지르기 시작한 지 거의 보름.


만났던 인간에 대해 잠깐 생각한다.




무표정한 경찰은 강아지를 데리고 나를 위협했고


유쾌한 호스트는 샴페인을 준비해 주었다.




옆 자리에 앉았던 나와 동갑인 블라디미르는 자녀가 셋이었고


허리가 불편하던 할머니는


일층 자리를 양보해준 내게 사랑한다고 했다.




유창한 영어로 맛있는 커피를 내려준 누님과


시비붙을뻔 하던 순간에 손짓으로 우릴 구해준 아주머니까지,


내가 이순간 가지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인상은 딱 위에 쓰여있는 대로이다.


내가 붙임성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다양한 인간을 만났고,


이젠 시베리아에도 시베리아의 사람에도 익숙해져가고 있다.


이제 밤을 지나면 아침에는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


예카테린부르크에선 기차역에 짐을 맡기고 한바퀴만 돌고 바로 다시 기차를 타야한다.


바쁜 일정이 될테니 미리미리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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