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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D+260]공기 반 매연 반, 수크레(1)
Vagabund.Gni 2018. 3. 13. 11:43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수크레(Sucre)는 프랑스어로 설탕이라는 뜻이다.
스페인 식민지 출신 도시에 갑자기 프랑스어? 라는 생각이 들어 알아보니
볼리비아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명이자
페루 독립전쟁 중 아야쿠초 전투에서 크게 활약한 베네수엘라의 장군,
안토니오 호세 데 수크레(Antonio José de Sucre)의 성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우유니에서 수크레로 오는 버스는 포토시를 거치는데,
볼리비아 버스에는 항상 잡상인이 타서 뭔가를 팔고 있다.
포토시 터미널 앞에서 사먹은 갈비탕. 짜다.
어느 도시나 가장 치안이 안좋은 터미널 근처에서 시내로 나오던 버스.
이래저래 고생을하며 수크레에 도착했다.
설탕처럼 하얀 건물이 늘어선 도시이자 볼리비아의 헌법상 수도, 그리고
네 개의 이름을 가진 도시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수크레는,
내겐 남미 여행 중 가장 별로였던 도시 중 하나로 기억에 남아있다.
이 곳에 오기 전에는 블로그나 여행 관련 서적에서 좋은 말만 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수크레 일정을 무려 5박 6일이나 잡아서 왔다.
잘 보면 식민지 시대 건물과 도시가 남아있는 터라 길이 굉장히 좁은데,
저 좁은 길로 언제적 차인지 알 수 없는 차들이 굴러다니며
매연을 엄청나게 내뿜는다!
우리는 전형적인 스페인 식민지 양식의 주택을 빌려 머물렀는데,
네모 꼴로 생긴 주택 안에 작은 정원이 들어선 집이었다.
이 중에서도 구석진 곳에 머물렀는데
매연이 얼마나 심하면 그 구석에 있는 우리 방까지 들어온다!
있다보면 코가 아파서 차라리 매일 비가 오기를 바라게 될 정도.
설탕처럼 하얀 도시에서 내 폐에는 그을음이 잔뜩 앉았다.
그래도 찌그러져 있을 수만은 없으니, 맑은 날엔 산책.
법원 앞 공원.
우기에 접어드는 수크레는 맑은 날이 드물어,
해가 난다 싶으면 얼른 나가서 일광욕을 해야 한다.
해발고도 2800미터의 고산도시 수크레는
산책만 해도 숨이 가쁘다.
사진만 보면 맑은 날의 공원 같지만,
지긋지긋한 매연 냄새는 우리를 끈질기게 따라온다.
그게 오죽 싫었는지, 나는 사진만 봐도 코가 아프다.
이게 과장이나 내가 예민하게 구는게 절대 아니다.
꼭 이 도시에 와서 보고싶은 게 있거나 초콜렛을 먹고싶은 게 아니면
도시 방문 자체를 말리고 싶다.
매연이 심하기로 유명한 쿠스코, 리마, 라파즈?
여기 왔다가 가면 그 맑은 공기에 감사하게 될거다.
그래도 사진으로 다시 보니 좋군.
종종 돌아다니던 아이스크림 차.
귀엽게 생겨서 한 번 사먹어보고 싶었지만 실패.
매연에 면역이 있거나 나처럼 마스크를 열심히 끼고 다니면
풍경 자체는 봐줄만 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수크레는 초콜릿으로 유명하다.
하루 종일 골목에서 매연 냄새를 맡다 보면
나도 표지판 속 사람들 처럼 승천해 버릴 것 같다.
수크레에는 성당과 수도원이 많이 있다.
그 중에는 개방을 하는 곳도 있고 그럴듯한 박물관이 있다고도 하는데,
내가 유일하게 구경한 곳은 시장 뿐이다.
마트 물가도 생각보다 비싼데다 물건도 많이 없는 볼리비아.
맥주도 비싸기만 하고 맛이 없다.
이럴 때 믿을건 역시 과일.
산딸기와 딸기를 사서 집에와서 먹었.. 으나 맛이 없다.
정말 맛이 너무 없어!!!
고기와 과일이 풍부한 칠레에서 넘어온 나는
갑자기 난민체험을 하는 듯한 기분에 빠진다.
그래도 친절하고 재밌는 사람들이 모인 시장.
볼리비아 시장에서 사먹을 게 있다면 바나나와 포도, 그리고 치즈이다.
특히 이 지역에서 나는 고산지 청포도는
한 입 먹으면 꽃향기가 난다.
가격은 다른 과일에 비해 비싸지만 수크레 이후로 그 포도맛을
느껴본 적이 없으니, 꼭 드셔보시길.
그리고 볼리비아의 술 중 그나마 먹을만한 것, 싱가니.
페루의 피스코와 오리지날 논쟁이 있는 이 술은, 포도로 만든 소주라고 보면 된다.
그냥 마셔도 맛있고, 얼음과 라임, 그리고 설탕과 달걀 흰자를 섞은
피스코사워를 만들어 먹어도 맛있다.
불가리아의 라키아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가성비 높은 알콜이라,
백포도 한 병 적포도 한 병씩 마셨다.
햄버거와 핫도그 등을 팔던 가게.
사람들이 많이 먹는 것 같길래 나도 하나 먹어봤다.
사진은 다음 글에 몰아서.
그리고, 길을 다니다 보니 의외로 이곳에 스페인어 학원이 많이 있었다.
궁금해서 알아보니 수크레에서 장기체류를 하며
스페인어 레슨을 받는 사람이 많다고.
이쯤되면 우리가 머무르던 시즌에만 매연이 심했던 건 아닌가 의심이 든다.
기대하고 왔다가 뺨맞은 기분이 들었던 수크레,
큰 기대 하지 않고 와서 숙소를 살짝 외곽에 잡으면
나름 즐길만한 곳인지도 모른다.
조금 억지로 써내려간 수크레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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