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2017년 4월 30일


리가에 도착했을 땐 이미 11시가 지난 늦은 밤이었다.


설상가상 예약해 둔 호텔이 쓰여있는 주소지와 실제 위치가 달라 30여분을 헤맸다.


하지만 중간에 마주친 내 또래 쯤 되어보이는 백인 누님은


우리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도와준다고 다가왔고,


고생 끝에 도착한 호텔 프론트 직원 역시 늦은 우리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 주었다.


이정도로 따뜻하고 친절한 나라 였다니..


늦은 밤 추위에 떨면서 30여분을 헤맸음에도 라트비아에 대한 이미지가


아직까지도 매우 좋은 이유이다.



다음 날, 2017년 5월 1일 노동절 리가의 하늘은


역시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아침부터 맑았다.


이 이후로 그야말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우리가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노동절이라 시내에 열려있는 가게가 드물다.


그만큼 차도 사람도 없이 한적한 거리를 햇발을 맞으며 걸었다.


발트해를 따라 뻗어있는 고속도로 위를 300여 킬로미터 달려 도착한 남쪽나라.


아직 따뜻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춥지도 않은 바람이


봄을 예고하고 있었다.



조금 걸어서 도착한 공원 <베르마네스 정원>.


무려 개나리가 피어있다!


남쪽으로 달려온 만큼 봄에게 가까이 다가왔나 보다.



나름대로 이런 작은 꽃들도 잘 심겨져 있고.


지도를 보니 리가에는 이 베르마네스 정원 말고도 공원들이 꽤 많이 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나무에도 잎이 달리기 시작하면 더 화사하겠지.



휴일을 맞아 가족단위로 연인단위로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모여앉아


광합성을 즐기고 있다. 딱히 뭘 하지는 않고 앉아서 대화를 하고 멍을 때리고 하는


모습들이 부럽다. 괜히 나보다 그들이 더 여유있어 보여서.



이제 막 초록이 비치는 나무들 아래로 관리가 잘 된 풀밭이 넉넉하다.


러시아를 떠나고 나서 마주치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웃고있다.


웃고, 쾌활하고.


여기에서 맞고 있는 햇살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인 것 같다.



공원을 산책하다 보니 멀리서 보이는 정교회 성당.


지붕 색이 상트페테르부크르의 성 이삭 대성당을 닮은것을 보니 이 성당 지붕도


주철로 이루어졌나 보다.


하지만 대성당 같은 권위적인 모습은 없다.


성당에 들어가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자전거 무리가 지난다.



아마도 자전거 경주대회인 것 같은데,


사진에 보이는 일반적인 자전거 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재미있는 모양의 자전거가


즐겁게 지나간다. 자전거의 행렬만 거의 5분 여.


노동절을 맞이해 모든 세대가 다 같이 자전거를 타고 즐기는 모습이 그야말로 유럽이었다.



자전거 행렬을 끝까지 구경한 후 뒤로 돌아 다시 성당을 보았다.


이 성당의 이름은 <예수 탄생 기념 성당>쯤 되려나.


<Riga Nativity of Christ Cathedral>이라고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여느 정교회 성당과 마찬가지로 십자가 형태로 생긴 내부에 풍기는 향냄새.


가족단위로 와서 조용히 성호를 긋고 인사를 하는 풍경도 이젠 익숙하다.



계속해서 리가의 구시가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베르마네스 공원과 정교회 성당, 그리고 구시가지는


각각 걸어서 5분정도 거리에 위치한다.


사진은 구시가지 초입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쓰여있는 문구는


'조국과 자유를 위하여'


원래 제정 러시아의 황제 표트르 대제의 동상이 서있던 자리에, 


독립 후 20세기 초반 시민들의 모금을 받아 여신상을 세웠다고 한다.


여신이 받들고 있는 세 개의 별은 라트비아에 속한 세 문화권을 뜻한다나.


소련시대에 어떻게 헐리지 않고 살아남았는지 신기하다.


찬바람이 부는데 헌병은 꼼짝도 않고 서있다..



구시가지로 넘어가는 다리 아래 수로엔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



라트비아의 국립 오페라 극장. 그냥 지나가다 있길래 찍어보았다.



발레 공연도 열리는지 이런 조형물도 있다.


파란 하늘 아래 시원한 포즈가 잘 어울려서 찍어봄.



오페라극장 앞 분수대에도 이렇게 깨끗한 물이 담겨있다.


이상할 정도로 투명하게 비치는 물이라 기분이 이상할 정도였다.


앉아있고 싶었으나 바람이 차서 그냥 걸었다.



여기저기 조금씩 꽃이 보인다.


저 멀리 빨간 건 꽃이 아니라 풍선이다.


하늘이 무슨 사막 한 가운데서 보는 듯 파랗다.



구시가지에 들어왔다.


탈린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성벽의 망루이자 화약고로 쓰였던 곳이다.



왼쪽에 보이는 것이 복원된 성벽.


그리고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스웨덴 군의 막사로 쓰이던 건물이라고 한다.


갑자기 여기서 왜 스웨덴이 뜬금없이 나오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16세기에 라트비아를 지배하던 폴란드-리투아니아는


17세기 초에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패해 라트비아를 잠시 빼앗기게 된다.


이 시절 스웨덴의 국왕은 성벽에 구멍을 내 문을 하나 만드는데,



그게 바로 이 문이다.


스웨덴의 상징이었던 사자문양이 새겨진 이 작은 구멍은


17세기에 스웨덴의 왕이 지나간 이후 스웨덴 문이라고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시절에 지어진 막사 건물들이 복원되어 남아있는 모양이다.



이번엔 성벽 위주로.



스웨덴 문 앞에 있는 작은 골목길에 쓰여진 낙서.


한국어가 쓰여있으면 사진찍어서 블로그에 박제하려고 찾아보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못찾았다.


굳이 열심히 찾고 싶단 생각도 안들고.



탈린과 여느 러시아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리가에도 광장이 있다.


규모 면에서는 탈린보다 크고 넓고 사람도 많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애매하다.


이 전에 복원된 성벽을 볼 때도 느꼈던 감정인데,


뭔가 애매하다.



광장의 반대편.


추운 날씨에도 따뜻한 햇살 덕인지 야외에서 커피나 와인, 맥주를 한 잔씩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래서 우리도 앉아보았다.


이 동네 물가 치고는 저렴하지 않지만 그래도 싼 편인 맥주와 커피를 한 잔씩 주문.


두 잔 합해서 5유로정도 나왔던 것 같다.


사진만 보면 날이 되게 더워보일 수도 있는데 상당히 추웠다.


음식점에서 아예 야외테이블에서 사용할 담요를 나눠줄 정도.


맛있는 맥주를 천천히 마시며 근처 길거리 음악인의 클라리넷 연주를 들었다.



구시가지를 빠져나오면 바로 보이는 다우가바 강.


이 강을 따라서 조금만 내려가면 바로 발트해가 나온다.


날이 추워서인지 물이 유난히 파랗고 깨끗해 보인다.


치맥이 간절히 땡기는 풍경 이었지만


치킨도 맥주도 날씨도 없다.


강바람이 추워서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다시 구시가지를 지나 밥을 먹고 호텔로 돌아가기로 한다.



리가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인 검은머리 전당.


사진 오른쪽, 꼭대기에 황금 닭이 달린 건물이 그 전당이다.


중세 상인들의 숙소이자 연회장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14세기에 지어졌지만 여러번의 개보수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단다.



오른쪽에 보이는 검은 머리를 한 사람 때문에 검은머리 전당이라고 불린다.


사실은 그냥 사람이 아니라 왼쪽의 성 모자와 더불어


길드의 수호성인쯤 되는 분이라고 한다.



전당 맞은편에 위치한 리가 시청건물.



리가의 수호성인, 롤랑드 기사상(의 가품) 앞에선 한 테너 아저씨가


홀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바이올린도, 첼로도, 클라리넷도 기타도 보았지만


이렇게 성악 공연을 하는 것은 처음 본다.


동전을 주는 사람들과 유쾌하게 하이파이브도 해주던 아저씨.



높이 123미터를 자랑하는 성 베드로 성당의 첨탑.


방금 본 롤랑드 기사상의 본품이 이 성당 안에 있다. 하늘이 예뻐서 그냥 찍어봤다.



베드로 성당 뒤쪽으로 돌면 나오는 브레멘 음악대 동물상.


독일의 브레멘 시에서 기증한 물건이라고 한다.


동물들 코가 번들거리는 것을 보니 만지면 좋은일이라도 있나 보다. 



구시가지를 빠져나오는 길에 있던, 베이스 기타 솔로 연주를 하던 음악인.


여행중 들은 기타연주 중에 가장 나은 편이었다.


점심은 아까 들렀던 공원 근처 <Lido>로 갔다.


현지인도 많이 가는 곳이라고 하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부페식 음식점이다.


러시아에서 종종 가던 식당과 비슷한 시스템이지만,


음식은 이쪽이 훨씬 낫다.



기름에 볶은 감자와 소시지.



샐러드 작은 그릇. 2.8유로 정도에 샐러드 그릇을 한 번 이용하는 시스템이라


열심히 담아봤다.


샐러드를 제외한 음식들은 말하면 일인분씩 담아준다.



이건 높이 먹은 볶음밥.


여태 먹었던 쌀 음식중에 중국집을 제외하곤 제일 맛있었다.


러시아의 그 것들은 볶음밥이라기 보단 기름밥이야...


숙소에 오는 길엔 늘 그렇듯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음식은 뭐 별로 안사고 맥주만 사다가 먹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에서 반드시 먹어보라는 술 블랙 발삼.


상트페레트부르크 여름궁전의 첫 주인 예카테리나 여제가 리가에 방문했다가


이 약을 먹고 병이 나은 후로 약주로 유명해진 술이다. 


허브가 많이 들어간 술이라길래 예거 마이스터를 생각하고 먹었다가 당했다.


향도 강하고 도수도 높고. 그냥 샷으로 마셔서인지도.


콜라에도 타서 마시고 이래저래 마신다고 한다.


일단 중간사이즈 한 병을 사서 들고다니며 먹기로.



사이다.


원래 사이다는 사과로 만든 과실주란다.


굉장히 싸고 맛있길래 이것저것 사서 먹어봤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사이다만 올리는 이유는..


심각하게 맛이 없다. 혹시나 사 먹을 생각을 한다면 말리고 싶다.


이 이후에는 무한도전을 하나 보고 그대로 잤다.


야경을 보러가려고 처음엔 계획 했었으나 높이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해서.


다음날엔 느즈막히 일어나 체크아웃을 한 후,


기차역에 짐을 맡기고 근처 카페에 들어가 뒹굴거렸다.


아, 참고로


발트3국에선 버스터미널 보다 기차역에 있는 코인락커에 짐을 맡기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보통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이 붙어있으므로 우리처럼 버스를 이용하는 여행자도


기차역에 있는 코인락커를 이용하기가 용이하다.



뒹굴거리던 카페. 나름 동양느낌을 내느라 신발도 벗고 들어가야 한다.


대신 누워서 컴퓨터 등을 하며 놀수 있어 좋음.


카페 이름은 <Apsara>. 캄보디아, 인도에서 많이 듣던 그 압사라가 맞는듯.


하지만 내부 장식은 불교 위주이다(...)



추천해준 차. 세 시간을 넘게 노닥거렸다.



다음 국가는 발트3국의 가장 마지막 나라, 리투아니아.


남쪽으로 한참을 더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더 따뜻할 것 같다.


친절한 사람에 친절한 물가에 친절한 날씨까지.


동유럽의 봄은 이렇게도 좋구나.

반응형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