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2017년 5월 7일


바르샤바의 일기예보를 확인한 우리는, 좋은 날씨에 대한 기대는 접고


고이 넣어두었던 바람막이를 다시 펼쳤다.


거기에 더해 머물렀던 숙소가 추워서인지 잠도 만족스럽게 못 잠.


러시아에 비해 남쪽으로 꽤 많이 내려왔고 이제 5월이기도 해서


방심했던 내 탓이 크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얇고 길구나- 생각하며 꾸물거리는 하늘 아래로 나섰다.



오늘은 우선 올드타운의 남쪽 절반을 보기로 했다.


어제 갑자기 만난 소나기 때문에 근처도 못가보았으니 억울해서.


흐리고, 바람이 차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보니


야외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밥먹기는 시작부터 틀렸다.


사진은 성모의 어머니 안나상과 그 앞에 놓여진 꽃들.


매일매일 자발적으로 새로운 꽃을 놓는 것인지 까지는 모르지만


안개비에 젖은 석상과 그 앞의 꽃들은 색이 진하기도 하다.



남쪽으로 걷는다. 일요일이지만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사실 걸어다닐 때는 춥고 축축한 날씨 탓에 짜증이 났지만


사진으로 다시 보니 이 오래된 도시엔 이런 하늘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조금 더 걸으면 나오는 폴란드의 낭만주의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의 석상.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학생운동을 하다 잡혀 추방당하기도 하고


말년에는 크림전쟁시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한 폴란드인을 모집하는 등


단순히 시인으로서만 존경받는 사람은 아니라고 한다.


아주 당연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그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사람.


그 옆으로는 바로크 양식의 작은 성당이 하나 있다.



앞에선 오늘도 도시의 배경음악을 만들어 주는 아코디언 연주자.


서울의 도심을 걸으면 온 가게에서 크게 틀어놓은 각종 음악을이 뒤섞여


스트레스를 꽤 받는 편인데, 이 곳은 그렇지 않아 좋다.


기껏해야 아코디언에 색소폰 소리가 섞이는 정도.


조금 관찰 해보니 연주자 끼리도 암묵적으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룰이 있는 모양이다.



계속해서 걸으면 보이는 대통령 궁.


그 앞에는 폴란드의 군사적 영웅인 유제프 포니아토프스키의 동상이 있다.


왕족의 가문에서 태어나 17세부터 평생을 군인으로 살았던 이 남자는


폴란드 군 내부의 개혁이나 여러가지 업적으로 인한 나폴레옹의 대우,


주위의 쿠데타 요구에 대한 무시 등

 

여기에 다 적지 못할 정도로 길고 재미있는 삶을 살다 갔다.


2차 세계대전 중에 폴란드 망명정부가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공군 편대를 창설할


정도라니 알 만하다. 



그 동상 앞에 놓여진 꺼지지 않는 촛불과 꽃.


많은 폴란드 사람들이 그 앞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



대통령궁 입구에 있는 사자상.


표정이 오묘하고 귀여워서 찍어봤다.


잘 보면 앞발도 앙증맞다..



대통령 궁 맞은편엔 단체관광을 온 노인분들이 계셨는데,


인솔하는 사람이 노란 우산을 쓰고, 투어 참가자들은 노란 스카프를 메고


다니는 모습이 인상깊어서 찍어봤다.


색상이 꽤 센스가 있고, 스카프와 우산이라니 아이템 선택도 탁월하다.


어? 노란색...?



대선참패한 찐따라 모자이크 처리 해드렸음.


다른 의도는 없고 그때 노란색에 반응하는 이 태도가 너무 웃겨서 생각남 ㅋㅋㅋ


아무튼 병아리같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노란우산을 따라다니는 광경은


비내리는 도시에 발랄한 색을 더해 주었다.



여기에선 방향을 조금 틀어 구시가지를 벗어났다.


넓은 공원에 폴란드 국기가 크게 걸려있는 것이 보여서 와봤는데 이런 곳이었다.


이 곳은 피우수츠키 광장.


폴란드의 독립영웅 유세프 피우수츠키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광장이다. 



광장 한가운데 나부끼고 있는 폴란드 국기.


엄숙 까진 아니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시민과 관광객이 시간을 보낸다.



좀 더 가까이 가보니 무덤처럼 생긴 곳에 꽃과 촛불이 놓여져 있고,


그 양 옆을 헌병들이 지키고 서있다.


이 곳은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희생된 이름없는 군인들을 위한 무덤이라고 한다.


외국 사신들이 반드시 방문하는 곳 중 하나이며, 


당연하게도 폴란드에 있어 의미가 깊은 곳이다.



꺼지지 않는 불꽃을 지키는 군인.


날이 그나마 선선해서 다행이지만 춥지는 않을까.


단체관광객이 다녀가고 시민들이 거닐어도 미동도 않고 있는 헌병이 멋있다.


이정도 대우는 해주는 게 맞다. 국민 선전을 위해서건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건.



그 무덤 뒤에 작게 펼쳐진 공원.


바로크 양식의 동상이 늘어선 이 공원을 바르샤바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그리고 그 옆에 놓여진 음악 벤치.


바르샤바 구시가지를 다니다 보면 이와 같은 벤치가 많이 놓여져 있다.


잘 보면 쇼팽의 글과 악보 및 여러 소개가 쓰여져 있으며,


버튼을 누르면(혹은 터치하면) 쇼팽이 흘러나온다.


날이 좋으면 벤치마다 누르고 한참 앉아있기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서서 한곡만 듣고 다른 곳에선 그냥 지나쳤다.


음악은 쇼팽 박물관 가서 많이 듣지 뭐.



다시 구시가지로 들어왔다.


성모 마리아 방문 수녀회 앞으로 스테판 비진스키 대주교의 동상이 보인다.


스테판 대주교 역시 나치에 대항해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싸운 인물이다.


요한 바오로 2세와 더불어 폴란드의 국민적인 영웅으로 추앙받는 가톨릭 인사.



성당 내부.


흐린 날씨에 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지만 축축한 대리석 느낌도 나쁘지 않다.



바르샤바 대학으로 가는 길.


궁전 박물관? 문에 있는 석상을 찍어봤다.



바르샤바 대학 정문에 새겨진 사자.


바르샤바는 세계적인 교육도시라고 한다.


도시 인구 중 학생인구 비율이 굉장히 높기 때문인데,


수 많은 대학 중에서도 바르샤바 대학의 공원은 아름답기로 소문 났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비가...


입구에서 만난 (교수로 추정되는)아저씨에게 한글의 우수함에 대해 강의 듣는 시간만 보냈다.



구시가지의 거의 끝자락, 반드시 방문해야 한다는 성 십자가 성당이 나왔다.



세 개의 십자가로 꾸며진 정면 지붕.



또 그 앞엔 십자가를 진 예수와 '수르숨 코르다'.


한국어로는 '마음을 드높이', 영어로는 'Lift up your heart'.


특히 이 문장이 주는 이중적 느낌이 재미있었는데,


실제로 이 성당에는 쇼팽의 심장이 묻혀있기 때문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미사가 한참 진행중이라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성당 내부에 들어가면 쇼팽의 심장이 이 곳에 쉬고있다는 문구와 함께


역시 꽃이 놓여있다.


그런데 왜 심장만?


쇼팽은 39세의 나이로 프랑스 파리에서 숨졌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쇼팽은, 죽기 전 유언으로 심장은 폴란드에 매장해 달라고 했단다.


그 유언에 의해 몸은 프랑스에, 심장은 동생에 의해 폴란드에 묻혔고,


지금은 화려하게 복원된 성 십자가 대성당에 안치된 것이다.


독립투사들이 대대로 존경받고 또 기억되며 죽어서도 어머니의 나라를 기억하는


폴란드 사람들의 마음이 잘 느껴졌다.



미사를 잠시 지켜보다 다시 거리로 나왔다.


이상하리만큼 바르샤바엔 인도 마켓이 많이 있다.


인도 음식점도 많이 있고.


실제로 폴란드인임에도 이마에 빈디를 붙이고 다니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나로선 이유를 알 수가 없지만 하도 많이 보이길래 하나 찍어봄.



구시가지의 끝.


천동설 끝장의 선봉에 선 코페르니쿠스 형님의 좌상이 놓여있다.


형님의 좌상 뒤로는 스타스지카 궁전이 있다.


현재는 폴란드 과학 아카데미 본부로 사용 되고 있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 형님 좌상의 측면.


말 그대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주인공인 형님의 늠름함이 느껴진다.


과학자이자 사제이자 5개국어에 능통했던 폴란드 전성기의 천재 철학자.


영웅으로 칭송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좌상 앞에는 지동설을 상징하는 블럭이 깔려있다.


이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도 있고



쭉쭉 행성이 이어지다 토성에서 끝이 난다.


그의 이론을 따른 것인지 행성 궤도는 (언뜻 보기엔)완벽한 원이며(...)


토성 바깥의 행성이 없는 이유는 (내 생각엔) 


  1. 천왕성부턴 궤도 반지름이 너무 크기 때문이거나
  2. 코페르니쿠스 생전엔 천왕성이 행성으로의 지위가 없었던 고증


두 이유 중 하나 이거나 둘 다이거나 인 듯.


현실적으론 1번이 더 그럴듯 하게 느껴진다.


어쨌건 순전히 철학적 직관으로 아름다운 이론을 골라낸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존경을


끝으로 구시가지에선 벗어났다.

반응형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