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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랜만에 한국에서 온 아이들 사진으로 시작.
현 시점, 나는 이미 이르쿠츠크에 도착해 있다.
열차 안에서 블로그 작성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서
조금 지난 일을 몰아서 적어본다.
하바롭스크 역 앞에서 지지와 세모.
다시 봐도 하늘이 예쁘다.
하바롭스크를 떠나기 전날,
호텔 근처에 있던 대형마트에 들러서 기차에서 3박4일 버틸 식량을 샀다.
러시아의 마트는 여러가지 독특한 면이 있는데,
그 중에서 내가 느끼기에 가장 좋은 점은
생맥주를 즉석에서 담아서 판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마트 한곳에 위 사진과 같은 코너가 설치되어 있고,
원하는 맥주와 용량을 선택하면
이와 같이 크고 아름다운 페트병에 생맥주를 담아서 준다.
전체적으로 러시아의 맥주들이 맛있지는 않지만,
모르고 그냥 먹는 재미가 있다.
뭘 먹어도 카스보단 낫지...! 라고 생각했으나
솔직히 어떤 맥주는 그놈이 그놈.... 하...
기차를 타기 직전의 우리의 짐이다.
녹색 배낭이 내것이고, 물은 크게 5리터짜리를 사왔다.
이 점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3박4일에 둘이서 물 5리터는 아슬아슬하게 적절했다.
식량은 세부사진은 찍지 않았는데,
대충 컵라면 종류별로 4가지, 물부어서 먹는 으깬감자(?) 두개, 소시지 8개들이 하나, 초콜릿, 믹스커피 2개,
케찹과 산딸기쨈, 호밀빵 큰거 한봉지 이정도 샀던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 역 앞 편의점에서 충동적으로 구입한 잇아이템!
블라디보스톡 산 버터오징어!
부드럽고 짭짤하니 완전 안주다.
물론 우리는 쫄보라 술은 못가지고 타고 물이랑 먹었다.
다음에 다시 눈에 띄면 다시 사서 맥주랑 먹어야지.
하바롭스크는 떠나던 날까지 파란 하늘을 보여주었다.
3박 4일짜리 기차여행을 출발한다는 생각에 우선 기분이 좋았다.
옷을 조금 두껍게 입었으나, 이미 이 먼 북국에도 봄이 오고 있었고
영상 18도의 날씨에도 녹지 않고 그늘에 쌓여있는 눈이 신선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내가 아주 좋아하는 시 중 하나를 뽑아서 미리 읽고 가겠다.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艱辛)한 그림자를 떨어트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_1942. 5. 23
이 시에 친구가 곡을 붙여 나와 몇 사람 목소리로 녹음한 곡이 있는데,
그 곡을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듣는다.
지금은 인터넷이 조금 느려 올리는 데 실패했지만,
나중에 따로 글을 하나 올릴 계획이다.
기차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침대기차. 라고 하면 유일한 경험이던 인도에서의 기차를 떠올리던 우리는
차 안에 올라서면서 부터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이토록 청결하고
이토록 조용하고
이토록 평화로운 침대칸 열차라니!
지금 생각해도 3박 4일이 아니라 30일이라도 탈 수 있을것 같다.
두고두고 하게 될 러시아 사람들 칭찬이지만,
이 사람들, 열차 안에서도 큰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서로를 배려하면서 여행한다.
거기다 내가 어리버리 하고 있으면 무표정하게 와서 척척 도와주고
자기 갈길을 간다...!
나중에 글을 쓸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아주 가끔 마주치는 몇몇 미친놈들을 제외하면 러시아 사람들은 매우 따뜻하다.
아직 출발하기 전 세모와 지지.
볼수록 이쁘지 않습니까?
이 사진은 열차가 한참 달리고 있을때 찍은 내부 풍경이다.
사진으로 보는 것 만큼이나 평화롭게 시간이 흘러간다.
러시아 사람들은 기차에서 보통
카드놀이를 하거나
커다란 신문지(?) 에 있는 낱말퍼즐을 맞추거나
책을 읽거나
잠을 자거나
밤엔 몰래 보드카를 마시면서(!) 보낸다.
그런데 놀랍게도! 페트병으로 보드카를 벌컥 벌컥 마시는 아저씨들에게서
술냄새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발음이 꼬일 정도로 술을 마셨는데 목소리가 커지지도 않고
심지어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서 잔다.
순찰도는 경찰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철길 위 술자리도 이렇게나 평화롭다.
하지만 사진은 무서워서 못찍음 ㅋㅋㅋㅋㅋㅋ
역 앞 햄버거 집에서 산 버거들이다.
하나는 치즈버거고 하나는 치킨버거? 였다.
그런데 러시아는 버거 안에 케찹을 뿌리려면 돈을 내야한다.
카페에서 시럽을 넣으려면 돈을 내야 하고..
케찹을 매우 좋아하는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한통씩 들고 다닐수밖에..
아무튼 저 치킨버거. 크기는 작지만 생각보다 맛있었다.
맘스터치 싸이버거의 뺨까지는 아니고 딱밤정도 때리는 맛.
가격이 130루블? 쯤 되었던 것 같으니 뭐 아주 저렴한 편은 아니다.
읽고 읽고 또 읽는 윤동주 전집과 세모, 지지.
할게 없을 것 같지만 열차안의 하루는 꽤 빠르게 흐른다.
우선, 아침으로 사과 한 알과 홍차 한잔을 마신다.
러시아는 정말 차를 많이 마시는 나라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러시아산 차와 유제품이 그렇게 좋다고..
아무튼 홍차는 승무원에게 35루블을 내고 받은 것이다.
바로 이 컵과 함께.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이니셜이 박힌 이 컵은
구매할 수도 있지만 35루블을 내면 차 티백 하나와 함께
여행 내내 대여해서 사용이 가능하다.
+수정)우리가 말을 잘 못 알아들었었다. 컵 자체는 무료로 빌려준다!
컵 자체가 멋있게 생겨서 괜히 여기에 차 마시고 커피도 타마시고 했다.
홍차가 담긴 모습.
러시아가 여행 마지막 나라라면 한두개 쯤 사서 귀국할 것 같은 비주얼이다.
아침을 먹고 이후의 시간에는 간식을 먹는다.
먹다 남은 오징어와 정차하는 역에서 비싸게 주고 산 감자칩.
계속해서 창밖을 보면서 음악도 듣는다.
요 몇년간 음악은 거의 듣지 않고 지냈는데
움직이는 풍경만 바라보니 음악이 잘 들린다.
어쩌면 그 몇년 동안은 머리속에 너무 많이 채우고만 있어서
틈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팟은 이제 내 소유는 아니다.
높을 만나기 시작했을 때 쯤, 소유권을 넘겨버렸으니까.
2007년, 제주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복학해서 없는 살림에 큰맘먹고 장만했던 아이팟.
그 뒤에 새겨진 Carpe Diem.
시간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흐른다.
창밖을 보다 심심하면 이런것도 찍는다.
사실 이 타임랩스 말고 풍경을 찍은 것들도 많이 있는데
용량이 큰 것도 아닌데 자꾸 업로드가 안된다.
봄이 오고있는 시베리아는 굉장히 아름답다.
낮에는 끝없는 평원과 파란 하늘,
그리고 곧 그 위를 달리는 저녁노을과
쏟아지는 듯한 별빛들.
머지않아 시간에 따라 각도에 따라 크기에 따라 구름의 색이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는 나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멍때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철길 옆에는 1킬로미터마다 표지판이 있다.
아마도 모스크바 까지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듯하다.
이제 6000킬로정도 남았군...
열차에 오르면 승무원이 담요와 수건을 한장씩 나눠준다.
담요는 매트리스를 감싸는 용도 하나와 덮는 용도 하나, 그리고 베갯잇까지.
매트리스 자체도 관리가 잘 되어있는 듯 하지만 그 위에 담요까지 감싸고 베갯잇까지 새로 나누어주니
청결한 기분이다.
물론 먼지가 많이 날리고 수건의 질이 좋지는 않으나,
역시 생각도 못한 깨끗함에 감지덕지.
다 설치하고 나면 위와 같은 모양이 된다.
매트리스도 꽤 좋아서 허리도 안아프고 잠도 잘온다.
가다 서다 하는 기차에서, 오다 가다 하는 사람들 틈에서도
나의 8시간 수면을 보장해 주는 침구류이다.
깨알같이 창문에는 햇살을 막는 가림막도 설치되어 있어서
나같은 사람도 푹 잘 수 있었다.
다만! 여기서 미세팁 하나가 있다.
키가 180이 넘는 사람은 통로쪽 침대칸을 이용하지 말자.
몸을 쭉 뻗고 잘수가 없어서 곤란하다.
양 끝이 막혀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다리를 접고 자든가 옆으로 누워서 자야한다.
그리고, 팁이 나왔으니 말인데, 준비해서 타면 편한 물건들을 몇가지 소개해본다.
슬리퍼, 갈아입을 반팔, 반바지, 과일, 간식, 차, 커피, 책, 음악, 드라마, 드라이샴푸.
기차 안은 생각보다 덥다.
혹시나 하고 긴팔 긴바지를 입고 탔다간 높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자야한다.
그리고 과일과 간식과 차는......
많이 준비해도 모자란다.
맛없고 짜기만한 레이스 감자칩이 그렇게 먹고싶을 줄은 몰랐으니까.
물론 정차역에도 매점은 있으나,
가격엔 자비가 없다.
기차 내부에서는 공식적으로 금연이기 때문에
기차가 멈출 때마다 담배를 피우러 우루루 몰려가는 풍경을 볼 수있다.
어쨌든, 그렇게 64시간을 달려서 우린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시집을 읽고 소설책을 보고, 밥을 먹고 낮잠도 자고 창밖도 보고 하다보니
여정이 길지 않게 느껴졌다. 평온한 분위기에 취해..
그런데 우리는 이 곳에 도착해서 다시한번 러시아 츤데레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우리가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세시.
당연히 에어비앤비 숙소 체크인 시간까지 역 안에서 잠이라도 자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의 도착시간을 들은 호스트는 (물론 돈을 조금 아주 조금 받고) 그 시간에 맞춰서
우리를 역까지 데리러 와주었다.
그리고 체크인도 바로 시켜주었는데, 이렇게 되면 사실상 하룻밤을 더 자는 셈이 된다.
고마워서 어쩔줄 몰라하는 내게 방을 소개해주던 아저씨가 해준 말.
-스페셜 프레젠트 포 유
음? 하고 아저씨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스파클링 와인과 잔까지!
약혼식을 마치고 여행중이라는 우리를 위해 아저씨가 친히 준비해준 것이다.
물론 매우 맛있기도 했지만 그 배려심에 감동을 크게 받았다.
그리고 오늘까지도 그 무표정하면서 해줄거 다 해주는 러시아 스타일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시베리아 벌판을 따라 달리는 기차여행,
아름답고, 따뜻하고 또 여러번 말하지만 기분좋은 이 여행.
앞으로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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