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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8일 목요일.
어제 하실라비드에서 새벽같이 출발한 버스는 저녁무렵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어쩌다 보니 길이 잘 보이는 맨 앞자리에 앉아서 왔는데,
중간에 이런 길을 한 시간 넘게 지나가야 했다.
말도 안되는 산길을 위태위태하게 달리다가 사고의 위기를 한 차례 겪은 후,
나는 더이상 어린시절 오르던 대관령길에 대해 추억하지 않았다.
금식시간이 끝나는 시간 언저리에 체크인 한 첫날은 그냥 밥먹고 잠.
마라케시에서는 2박만 하고 지나가기로 했다.
에어컨이 나오는 숙소에서 푹 자고 다음 날 아침,
택시를 잡아타고 마조렐 정원으로 먼저 향했다.
해가 쨍하지 않아 풍경이 아쉽지만 너무 덥지 않아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마조렐 정원은 나에겐 생소한 이름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이 꾸민 정원이라고 한다.
더 자세한 역사는 정원 내에 쓰여 있었는데 중요한것 같지 않아 잊어버렸다.
강렬한 원색으로 포인트를 준 복도 옆으로
독특한 모양을 뽐내는 선인장들이 심겨 있다.
아름답다기엔 기괴한 모양. 내 감각이 떨어지는 지도 모른다.
그 옆에는 친절하게 선인장의 출신에 대해 쓰여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식물들에도 불구하고, 이 정원이 유명한 이유는 이것들이 아니다.
바로 이 강렬하고 화사한, 파란색 덕분이다.
모로코의 어마어마한 햇살에도 지지 않는 쨍한 블루.
그 선명한 이미지 덕분에 마조렐 블루라는 별명도 얻었다고 한다.
정원 곳곳은 이 마조렐 블루로 포인트를 준 장식품들이 넘쳐난다.
물론 햇살이 더 좋은 날이면 좋았겠으나,
저를 믿어보세요. 흐린 날이 훨씬 좋아요.
정원 자체는 그리 넓은 편이 아니라 돈내고 들어가기 아깝단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게다가 정원 안에 있는 박물관은 또 따로 과금하는 형식이라....
정신승리를 좀 해보자면 정원의 아기자기함에 붐비지 않는 장소의 장점이 더해
한 번은 와볼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물론 두 번은 안갈거지만.
정원을 걷다 보면 아주 작게 이브 생로랑의 기념비가 있다.
사진은 찍었던 것 같은데 보이지 않아서 패스.
아, 참고로 이 정원 앞을 지나는 도로의 이름도 이브 생로랑로 이다.
식민지 제국의 디자이너를 기념하기도 하다니. 하긴 이런 경우는 의외로 많아
별로 놀랍지도 않다.
그래, 이 곳도 모로코다. 고양이가 빠질수가 없다.
한쪽 눈이 아파보이는 새끼고양이였는데 꼬질꼬질하니 엄마냥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이 무섭지 않은지 와서 아는체.
하다가 정원 관리 스태프? 로 보이는 파란옷 입은 아저씨가 챙겨주는 밥을 먹으러
달려간다. 잊지 않고 먹을것을 따로 챙겨다 먹이는 이 자상함...
종교를 가져야 하는 것인가...!
가져다 준 밥이 입맛에 안맞는지 조금 먹고는 시원한 자리를 찾아 눕는다.
아직 솜털도 안빠진 아이 같아 염려가 되지만 이 자상한 무슬림들 사이에선
건강한 아이로 자라나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
계속해서 정원을 산책한다.
매우 천천히 돌아본 덕분에 중간부터는 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프랑스인이자 이 정원을 처음 만든 예술가, 자크 마조렐이 살았던 집이다.
벽 전체가 마조렐 블루로 칠해져 있으며,
노란 화분과 파스텔 톤 출입문이 포인트를 준다.
잉어? 들이 잔뜩 살고있는 작은 연못도 있고,
물이 흐르고 있는 작은 수로도 있다.
한국식 고즈넉함과는 다른 어떤 여유로움이 이 정원에는 물을 따라 흐른다.
울창한 대나무 숲 사이에는 다양한 종류의 새가 살고 있다.
멍때리고 구경하느라 찍지 못했지만, 목욕을 하거나 구애를 하는 예쁜 새들을
잔뜩... 까지는 거짓말이고 종종 만나볼 수 있다.
의자에 앉아 그 여유를 좀 더 즐겨보기로 한다.
오가는 사람들도 편안한 표정으로 정원을 바라본다.
유난히 가족단위로 오는 관광객이 많은 것을 보면, 이 여유는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닌가보다.
나와서 걷는 길엔 아기를 밴 고양이가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이브 생로랑의 위대함은 잠깐 듣거나 짧게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해 따로 적지 않으려 한다.
다만, 이 마조렐 정원. 마라케시의 여행자라면 한 번은 들러볼 만 하다!
메디나 특유의 번잡함에 지친 그대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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