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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6일 금요일.
우리가 바르셀로나에서 머물던 숙소는 구엘공원 가까이에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료로 개방하던 이 곳은, 현재 8유로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개장시간인 8시 이전에 가면 티켓 부스가 아예 설치조차
되어있지 않아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마침 집 근처이기도 하고 뜨거운 낮에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도 없어
아침 일찍 방문했다.
이제 막 밝아지는 중인 구엘공원.
아침인데도 엄청나게 덥다. 거기다 습해! 바닷가의 여름이란!
예상보다 후덥지근한 날씨 탓에 지쳐버려서 사진을 대충대충 찍게 되었다.
가우디의 평생 후견인 구엘의 이름을 딴 이 공원은 처음부터 공원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시민 공원과는 정 반대인 부자들을 위한 주택단지로 계획되었으나,
위치 선정이나 디자인 등이 바르셀로나 상류층을 만족시키지 못해 중단된다.
이후 단지 전체를 정부에서 헐값에 매입, 개보수를 거친 뒤 구엘의 이름을 따
공원으로 개장하게 된다.
사진만 보면 언뜻 저녁같기도 하다.
어렴풋이 보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이 곳도 산이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전국 어딜 가나 산 하나쯤은 보이는 우리나라와는
풍경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듯.
다듬지 않은 돌들을 시멘트를 이용해 굳혀 자연석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야자수로 둘러싸인 어딘가 이국적인 풍경.
확실히 어느 부분에서 독특함이 있는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구엘공원을 거닐고 나서 확실히 느꼈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사선으로 놓인, 파도나 자연동굴 같은 느낌을 주는 통로.
곡선을 좋아했다는 가우디는 자연의 선을 그대로 살리는 데 재능이 있었나보다.
기둥에는 역시 자연석과 시멘트를 이용해 각종 조형물이 담겨있다.
아까 봤던 넓은 광장? 아래 부분의 공간.
고대 그리스의 도리아 양식을 차용해 기둥을 세웠으며,
대형 주택단지 안의 시장 역할을 하도록 계획되었던 공간이라고 한다.
아래부분의 타일 장식들이 밋밋하지만
그 사이사이의 천장에 포인트를 준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도리아 양식 기둥들 사이에 열리는 시장, 아이디어는 좋았다.
구엘 공원의 타일장식들은 대부분 가우디의 조력자 조셉 마리아 주졸이 담당했다고
한다. 어딘가 이슬람 양식을 떠올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넓게 펼쳐진 정원.
한바퀴 돌아봐도 좋을 것 같았지만, 더위가 지나치다.
가만히 앉아서 사진만 찍어도 줄줄 흐르는 땀.
아직 유월 중순이지만 유럽 남쪽의 더위는 무시무시하다.
계단 아래에는 가우디가 직접 디자인 했다는 용이 물을 뿜고 있다.
구엘 공원을 넘어 바르셀로나의 마스코트 수준으로 유명해진 이 용은,
이렇게 이른 아침이 아니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진을 찍을수가 없다.
그보다 한층 아래엔 성경에 등장하는 놋뱀의 형상이 있다.
십계명을 받으러 모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뻘짓을 하다가 화난 신에게 들켜
몰살당할뻔 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낸 놋뱀.
장대에 달려 높이 들렸기에 예수의 구원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하는 놋뱀은
가우디의 신앙을 잘 나타낸다.
뒤의 문양은 카탈루니아 국기.
하지만 나는 아무리 봐도 이 타일 장식들이 이슬람 장식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가우디가 내 생각을 들었다면 무덤에서 일어나 내 목을 치러 오겠지..
하늘이 조금씩 밝아져 온다. 적어도 축축함은 이제 좀 가시면 좋겠다.
슬슬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입구를 찾은 아줌마들이 왜 문을 안열어주냐며
경비원 아저씨에게 싸움을 건다. 그것도 한국말로.
집에 돌아갈 때가 되었군.
여덟시가 가까워 오면 어디선가 직원들이 나타나 줄을 치고
입구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돈을 받으려면 제대로 받든가 아예 받지를 말든가..
애매하고 미숙하기가 이루 말할데가 없다는 느낌.
날은 덥고 축축하고 가우디 양식은 내 마음에는 들지 않고. 빠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모자란 잠 보충.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날은 관광 일정 없이 뒹굴거리기로 했기 때문에
마음놓고 자고 일어나 아점을 먹었다.
그리고 시원한 카페로 찾아가 저녁까지 한량놀이.
이정도로 날이 더우면 관광 다니려는 의욕은 커녕 식욕까지 사라진다.
그냥 찬물로 씻고 에어컨 아래에서 배깔고 자고 싶은 생각만 잔뜩.
바르셀로나 마지막 일정으로는 몬주익언덕에서 하는 분수쇼를 보러 가기로 한다.
저녁이 되어도 좀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지 않는 바르셀로나.
도심을 뚫고 걷는다.
스페인광장 옆, 47미터 높이의 베네치아 탑이 시원하게 솟아있다.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에 있는 종탑을 본따 만들었다는데.
거기나 여기나 사람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멀리 보이는 카탈루냐 미술관 앞에 큰 분수가 있다.
덥다. 사진으로 다시 봐도 더워서 짜증이 올라온다.
분수쇼는 아홉시에 시작하지만 이미 사람은 가득하다.
아, 참고로 2017년 분수쇼 시간표는 아래와 같다.
06/01 ~ 09/30 : 매주 목, 금, 토, 일요일 ( 21:30 - 23:00 )
10/01 ~ 10/31 : 매주 금, 토요일 ( 21:00 - 22:30 )
11/01 ~ 01/05(2018) : 매주 금, 토요일 ( 19:00 - 20:30 )
하늘에도 슬슬 진짜 저녁이 오고,
준비한 라들러와
치즈 소시지를 꺼내 먹는다.
미리 준비해가지 않아도 시원한 맥주를 파는 상인들이 있다.
생각보다 그리 비싸게 팔지 않으므로(작은거 한캔 1유로?) 대충 가서 사먹어도 된다.
늦게 간 우리는 별로 좋은자리를 차지하진 못했다.
자리경쟁, 눈치싸움이 치열한 벤치.
우리는 그냥 화단 경계? 에 철푸덕 앉았다.
아홉시가 되면 조명이 들어오며 음악과 함께 분수쇼가 시작된다.
사람에 따라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지만,
나는 거의 30분 넘게 가만히 앉아서 즐겼다.
분수 바로 앞은 물이 쏟아지며 워터파크가 열린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게 노는 사람들, 그리고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노래와
분수, 조명들.
정직하게 말해서 구엘공원보다 만 배는 더 좋았다.
그리고 이것으로 에스파냐 여행은 마무리.
유럽 여행을 세 달 가까이 다니면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만나 보았지만,
크로아티아, 그리스 사람과 함께 에스파냐 사람이 인상깊게 좋았다.
결국 국가의 인상을 만드는 것은 미술관도 건축물도 아닌 상호작용 하는 사람들 이니까.
유쾌하고, 잘 웃고.
길을 헤메고 있으면 먼저 와서 도와주고.
도와주다가 모르겠으면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같이 고민하고.
능글능글하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내겐 더없이 좋았다.
가우디도, 지중해도, 빠에야도 아닌 에스파냐 사람들이 내게 스페인 뽕을 맞추었다.
아주 길게 일정을 잡고 꼭 다시 올게.
그때는 에어컨 있는 집에서 재워줘...
눌러앉아 살고 싶을 정도로 기분좋던 에스파냐, 끝!
아, 추가로 아래 영상은 분수쇼 중 하나. Viva la Vida. 이 노래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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