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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5일, 일요일.


피사에서 3박을 하기로 한 우리는 처음엔 남은 하루를 이용해


피렌체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제 친퀘테레가 충분히 만족스럽기도 했고 하루쯤은 더위를 피하고 싶다는 꾀가 나기도 해서,


개신교 휴일을 핑계삼아 뒹굴거리며 보내기로 했다.


숙소에 에어컨은 없었지만 건조한 날씨 덕분에 선풍기만 틀어도 매우 시원했고,


인터넷은 없지만 내가 열심히 준비해 온 미드가 있었다.


그저께 까르푸에서 장도 실컷 봐다 놨으니 나갈 일이 아예 없음.


뒹굴거리는 사진은 생략하기로 하고, 그래도 피사에 왔으니 피사의 사탑 정도는 보러


더운 시간을 피해 나선 사진으로 시작.



보수공사가 진행중인 피사 대성당.


사실 피사의 사탑은 이 대성당의 종탑에 불과하다.


기울어진 모습과 이러저러한 에피소드가 유명세를 넣어준 것이지.


중세의 피사는 베네치아와 마찬가지로 상업 중심의 도시였다.


역시 일단 도시에 돈이 넘치고 봐야 신의 집도 이쯤 거대하게 짓는가 보다.




사진으로만 실컷 보던 피사의 사탑 앞에 섰다.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 찍기가 힘들다.


그나마도 이건 아줌마 한 명만 나왔지.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진 이유는 어처구니 없게도 지반공사를 철저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짓고 나서 기운것이 아니라 공사 도중부터 기울기 시작해


예정보다 빠르게 공사를 마무리지어 버렸다고 한다.


최종 보수공사는 2001년에 마무리.



2001년 지반공사를 새로 한 데다,


전 세계의 사람이 몰려와 기울어지는 탑을 지탱하고 있으니,


지진이 나지 않는 한 더 기울어 지거나 무너질 것 같지는 않다.



성당의 서쪽부분 탑.


피사는 이 성당과 종탑을 제외하고는 볼거리가 전무하다.


우리처럼 한 며칠 뒹굴거릴 게 아니라면 굳이 숙박을 하지 않는 이유중 하나.



너도나도 잡아보자 피사의 사탑!



위 사진에 잘 드러나는데, 잘 보면 피사의 사탑 자체가 약간 휘어있다.


기울어지는 도중에 위쪽으로 공사를 하다 보니 바나나 같은 모양을 가지게 된 것.


저 높은 건물을 지으면서 지반공사를 3미터만 했다니, 알 만 하다.


그래도 이 사례 이후로 지반공사에 대한 중요성이 퍼졌다고도 하니,


여러모로 재미있는 탑이다.



멀리서까지 탑을 지탱하는 영웅들.


이게 내가 일부러 골라 찍은 것이 아니라 방문한 사람 중


대략 70% 이상이 탑을 한 번 이상 받들고 간다.



게다가 압권은, 사진 찍지 않고 얌전히 탑을 구경하고 있는 나더러


사진좀 찍게 저리 비키란다. 아니 자리 많잖아요 아저씨...


그래서 내가 한번 비키고 나니 조금있다 또 따라와서 비키라고.


귀찮은 생각이 들어 이번엔 비키는 둥 마는 둥 했더니 부인과 함께


중국인 욕을 한바탕 시작한다.


다 알아들어요 아저씨... 니네 딸래미들도 다 듣고있구요.......



어찌됐든 왔으니 사진을 찍긴 찍어야지!


머리가 점점 주체할 수가 없다. 차라리 빨리 더 길어서 다 묶이면 좋겠네.



파란 하늘 아래도 멋지지만, 구름이 꽤 간지나게 끼어준다.


지금 높은 작은 기둥? 펜스의 연결부위? 에 올라가 있는 중인데


저 위에서 엉덩이 춤 추다가 추락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영상 있는데 올리면 죽을까봐 나만 봄.



나도 위에 서서 찍어봄.


수많은 인파가 받치고 있는 탑은 굳이 내가 필요없어 보여 그냥 보기만 했다.



구름이 장난 아니다.


비가 올 것 같진 않은데, 찬 바람이 강하게 분다.


사람 출입을 금지해서 더 넓어보이는 잔디밭에 시원한 바람.


마음에 여유가 불어온다.



사랑이나 아량 같은 감정들은 다 탄수화물에서 나온다는 트윗을 본 적이 있는데,


그건 반만 맞는 말이다.


아름다운 감정들의 반 이상은 에어컨에서 나옴. 찬바람 최고다.


이렇게 피사의 낮을 즐기고는 집에 들어가서 다시 뒹굴거리기 시작.


저녁까지 먹고 해가 져 깜깜해질 때가지 기다려서 다시 나왔다.


높은 뒹굴거리는 데 중독돼서 차마 못나오고, 나 혼자 나옴.


혹시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카메라를 제외한 돈되는 물건 및 현금은


전부 집에 놓고 나왔다.



낮에 비해 확연히 줄어든 사람.


그만큼 당일치기로 피사를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지.


이제는 사진찍게 비키라는 사람이 없으니 찬찬히 풍경을 즐긴다.



탑 맞은편의 골목은 노란 불빛으로 물들었고.


사진으로 봤을 때는 탑에도 노란 빛을 쏴주던 것 같은데


오늘은 밝은 LED이다. 에너지 정책이 바뀐건가...?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 구시가지들 가로등을 LED로 교체하기 시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낭만은 좀 줄어들지 모르지만 에너지 절약은 옳은 일이지.


그런데 그 LED 위에 가로등 불빛 커버를 씌우면 안되나...?



어찌됐던 혼자 나왔으니 혼자 놀아보기로 한다.



소니 카메라들은 어플 연동으로 전화기를 리모콘으로 쓸 수 있어 편리하다.


구도를 잡아놓고 일단 가면 타이머 맞추러 돌아오지 않아도 됨.



나는 고독한 피사남자



만세하는 청년들을 지우고 싶으나 나의 포토샵 실력이 한없이 부족하다.


서울에 돌아가면 데탑으로 작업 해봐야지.


혼자 찍으면서 놀았던 사진들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탑을 구경하고 이젠 집으로.


가려는데 물건 파는 흑인 중 하나가 나를 붙잡는다.


혼자 다니는 아시안이라 타겟이 된 것인가...? 하고 쫄아서 이야기를 좀 나눠보니


본인은 세네갈에서 왔단다.


그리고 오늘이 라마단의 마지막 날이고, 내일은 한 달만에 가족을 만나러 간다고.


물건 파는 흑형들의 이런 썰은 대체로 믿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미안한데 나 돈이 아예 없다. 혼자 나오느라 지갑을 아예 놓고 나와서


가방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나도 라마단 시작하던 날부터 모로코에 있어서


절반정도는 라마단 보냈다. 라마단 끝난거 축하한다. 뭐 이런 식으로.


그런데 이 형님, 내 얘기 어디에서 내가 마음에 들었는진 모르지만 자기 물건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한테 내미는 작은 코끼리와 거북이.


라마단을 같이 했으니 너도 나의 형제란다.


-형제를 만나서 기쁘니 이건 너에게 선물로 주겠다.


-아니 나는 진짜 돈이 하나도 없어 주고싶어도 없다고....


-다음에 세네갈에서 온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 물건을 사주면 된다.


-ㅇㅅㅇ...?


그렇게 쿨하게 내 손바닥 위에 물건을 놓고는 씩 웃으며 잘가라고 손을 흔든다.


결국 통성명까지 하고, 선물은 받았다.



그게 이거.


아니 그런데 코끼리랑 거북이는 힌두교에서 좋아하는 동물들 아닌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겠지.


아무튼 내 친구 아부가 준 이 선물들은 아직도 내 가방에 잘 들어있다.


요즘도 숙소에 일단 도착하면 잘 보이는 곳에 아이들을 올려놓고


아부를 생각하니까.


눈치보고 있는 아시안 쫄보한테 와서 형제라고 해준 아부.


가족 이야기가 진짜였으면 좋겠다.



집 앞에선 주인이 있는듯 한 고양이가 나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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