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이 초승달 같아 사랑해도 돼? 맑은 날이야 이렇게 맑은 날이 없었어 우리가 같이 있으면 언제나 촛불이 꺼지는 걸 보았으니까 투명한 등불 속에서도 서로의 눈빛을 답습해야 했거든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나는 오래전 서리당해 창고에 박혀 있다 이렇듯 너를 사랑하나 효력이 없는 문장이야 우리의 세계에선 비를 맞는 것들만 소리를 내지 비는 조용해 모래사장에서 발과 발이 서로 멀어지는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너무 오랫동안 하늘을 본 사람에게 나는 내리고 싶어 누구도 기르지 않았던 차가운 꽃으로 그의 이마를 쓸어내리며 풍경의 서사를 아니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들에 버려져 있어 날짜가 지난 달이 떠 있다 하고 싶은 말 있는 듯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사람처럼 약속은 나무 위에서 우리를 들여다보다 한 번도 내..
2023년 12월 2일, 토요일. 목동역 메가박스로 영화를 예매하면서 근처 카페를 뒤졌다. 그러다 발견한 하니앤손스!! 오랜만에 만나는 이름이 반가워서 바로 즐겨찾기에 추가하고 동행에게 영업했다.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장식과 사진에서 보던 것보단 넓어서 놀란 실내. 테이블마다 콘센트도 있어서 느긋하게 작업도 가능한 수준의 넓이였다. 밀크티 맛집답게 다양한 밀크티를 선보이는 하니앤손스. 행리단길에 위치한 지점보다 즐길 수 있는 종류가 많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밀크티 시음이 가능하다는 것! 어쩌다 보니 세 종류나 되는 밀크티의 시음과 티 시향까지 조져버렸다. 요청하는 밀크티를 맛볼 수도 있고 추천하는 밀크티를 먹어볼 수도 있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는 직원의 소개에 귀를 기울..
2023년 12월 2일, 토요일 12월의 첫 주말은 떡볶이로 열기로 했다. 장소는 고양이부엌 목동점. 메가박스 목동점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위치한다. 손님 연령대가 굉장히 다양하면서도 북적대는 것이 동네 맛집이구나 싶었다. 즉석떡볶이답게 착한 가격에 맥주까지 팔아주는 친절함. 예정된 가게 리뉴얼이 1월에 끝나면 생맥주도 판매하실 계획이라고 한다. 직접 담으신다는 피클과 단무지, 물이 주어진다. 리필은 셀프. 우리는 반반 2인분에 달걀과 라면사리, 그리고 김말이를 추가했다. 반반이 신라면 정도의 맵기라고 하셨지만 건새우와 콩나물, 바지락이 들어간 덕분인지 맵게 느껴지지 않았고 볶음밥 2인분까지 야무지게 긁어먹고 나올 수 있었다. 위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고양이부엌 목동점은 12월 3일을 마지막..
소리 내지 말자 귀들이 다 없어지도록 칼날을 내부의 사랑이라 하자 피 묻힌 손으로 얼굴을 지우고 있다 하자 얼굴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하자 그 어떤 소리도 없다 하자 말들은 모두 울다 잠들었다 하자 미친 사람은 울부짖던 말에 칭칭 묶였다 하자 묶은 것이 지상의 사랑이라 하자 사랑은 사로잡힌 것이라 하자 사로잡힌 것에 타들어갈 수 있다 하자 미친 사람은 씻지 않고 검어진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몸에서 놓여난다 밝아오는 것은 묶인 것이다 허공은 다 타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라 하자 숲길은 세상에 없다 하자 숲길은 세상에 있다 하자 배가 제일 고파질 때 찾아오는 것이 죽음이라 하자 죽음은 맨 끝의 식욕이라 하자 가장 절박한 식욕이라 하자 생존이었다면 굶주림은 제 입도 같이 씹었다 제 살을 쉴 새 없이 삼키며 ..
그가 생글생글 웃으며 묻는다. 끝이 여엉 하고 뭉개진다. 눈에도 웃음. 입에도, 말에도 묻어나는 웃음. 연습한 걸까? 그와 자고 싶은 건 아니다. 자라면 못 잘 것은 없겠지만 어떻게 생겼든 웬만하면 그의 자지를 굳이, 딱히, 보고 싶지는 않다. 다 벗더라도 거기만은 가리라고 하고 싶다. 아니, 천을 휘감긴다든가, 맥퀸이 만들던 맥퀸이나 베르사체가 만들던 베르사체 같은 것을 입히고, 아니, 아니야, 그냥 티셔츠, 보풀이라든가, 올이 보이지 않는, 그런 티셔츠를 입히고, 아니야, 옷이야 상관없겠지. 깨끗하기만 하면 된다. 아니, 구겨진 옷이라도, 흉한 밴드 처리가 되어 있는 운동복이라도, 드러난 손목, 발목, 거기에 감긴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완벽함을 얻게 될 것이다. 구불구불 대는 밴드와 거기에 박음..
2023년 10월 29일 일요일. 아침부터 만나 영화를 보고 낮술을 조지러 광장시장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통큰 누이네 육회 빈대떡! 우리는 2호선을 타야 했기 때문에 을지로4가역에서 내려 청계천 방향으로 접근했다. 정말정말 오랜만에 오는 광장시장. 한동안은 사람 많은 곳이 힘들어서 어림도 없던 곳이라 감개가 무량했다. 청계천 방향에서 접근하면 위와 같이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전 골목이 있는 방향으로 걸으면 사진을 찍기 어려울 정도의 인파가 몰려있는 곳이 나오고 오늘의 목적지, 통큰 누이네 육회 빈대떡 가게가 나온다. 커다란 팬 뒷편에는 쉼없이 녹두를 갈고 있고, 한쪽에서는 빈대떡과 고기완자를, 한쪽에서는 꼬마김밥을 말고있는 풍경. 포장을 위한 줄이 매..
조금 일찍 쓰련다. 찬란했다고. 금을 잘못 밟고 들어선 이 섬뜩한 세계는 살기보다는 팽창하기를 요구했다. 버젓한 한 세계로의 도착이 아닌 것 같아 너무 많은 것을 헤매며 사용했다. 감정까지도 빛이 들지 않는 자리의 눈은 좀처럼 녹지 않고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의 먼지는 둘레를 키운다. 이 모두 내가 저지른 일만 같다. 안쪽의 사건들을 이해하겠노라고 바깥은 나를 받쳐냈다. 바닥에 끌리는 것들만 힘껏 받쳐야 할 게 아니라 명치에 도착하고 남은, 이 모르는 것들까지도 받쳐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자상한 시간들. 차가운 물의 명백함을, 물이 들어 지워지지 않는 그 격렬한 시간들을 차마 어떻게 마주한 것인지. 균형이었는지. 전부였는지. 그러므로 조금 미리 쓰련다. 당신도 찬란했다면 당신 덕분에 찬란했다고. - ,..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것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한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
2023년 10월 18일 수요일 까치산에서 집에 들어가려다 동네 떡볶이집이 새 단장을 했다고 해서 가보기로 했다. 동행의 말로는 제법 오래된 집인데 리모델링이 아니라 없어지는 줄 알고 아쉬웠다고. 해서 아주 간단하게 간식을 먹고 가기로 했다. 동네를 지켜온 옛날 떡볶이, 미담분식. 바깥에 서서 먹을 수도 있지만 사장님이 안에서 먹고 가기를 추천해 들어갔다. 의외로 이것저것 많은 메뉴판. 동행의 말로는 돈까스가 의외로 맛집이라고 한다. 우리는 떡볶이, 순대와 당연히 맥주를 시켰다. 제주 유자 생맥이라고 해서 시켰는데 유자청 위에 맥주를 담고 얼음을 두 개(!) 담아서 주는 충격적인 비주얼을 자랑했다. 다음번엔 까불지 말고 테라 생맥주나 먹어야겠다. 간단하게 들러본 동네 옛날 떡볶이, 미담분식 끝!
2023년 10월 16일 월요일 퇴근 후 사케 한 잔이 필요한 날이 있다. 산책길을 걸으며 눈독을 들여둔 숙성횟집도 가보고 싶고. 해서 월요일 근무를 끝내고 바로 달려가본 두꺼비 숙성횟집. 지도에서 찾아보고 나서야 알았지만 의외로 지점이 몇 개 있었다. 전부 근처에 모여있는 걸 보니 직영점인 것 같기도. 간판은 건너뛰고 바로 메뉴로 직행. 두꺼비와 기본의 차이는 회의 두께 차이라고 하셨다. 당연히 두꺼비가 더 두껍다고. 또한 각종 사케와 증류주가 있으며 콜키지가 병당 2만 원이라는 사실에 눈이 갔다. 가격은 숙성회 치고도 살짝 비싼 편. 하지만 그만큼 구성이 좋다. 주문하고 바로 나온 양배추와 간장마요. 나는 일단 생맥주로, 동행은 따듯한 도쿠리로 시작해 본다. 상 옆에는 기꼬만 간장과 히말라야 핑크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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