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셋째 날은 호텔에서 뒹구는 것으로 보냈다. 높의 컨디션이 떨어지기도 했고,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그 강도를 더하기도 했고. 호텔에서 뒹굴며 놀다가 근처 백화점에 가서 패스트푸드나 사먹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모스크바의 마지막 날. 새벽부터 구름한점 없는 하늘에 기대를 해보았으나 아니나 다를까, 체크인 시간이 되자 구름이 몰려오더니 이내 비와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기차는 밤 10시 기차인데 정오에 체크아웃 한 우리는 어째야 한단 말인가... 하늘이 뭘 잘못한건 없지만 약오르는 건 그저께나 어제나 오늘이나 매한가지다. 결국, 카메라는 가방에 넣어버리고, 배낭은 기차역 보관센터에 맡긴 후 점심이나 제대로 먹어보기로 전략을 수정한다. 그래서 결정한 곳이 북한 음식점 . 높..
굳이 다시 말하지만,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날씨는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그 변덕이 도를 지나쳐서 해가 나왔다, 구름이 꼈다, 비가 내렸다, 눈이 내렸다, 우박이 쏟아졌다 또 하늘이 맑았다.... 하지만 일기예보에는 딱 한 줄 쓰여있다. 구름. 처음에는 그런대로 즐길 만 했는데, 예측 불가능인 날씨가 이어지니 나중에는 적잖이 지쳐버렸다. 아무래도 카메라 때문에 날씨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모스크바에서의 둘째 날도 하늘에 휘둘리며 시작했다. 오늘의 목표는 아래와 같다: 푸른 하늘 아래의 붉은광장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아르바트 거리푸쉬킨 미술관 별관 19-20세기 갤러리 숙소 근처에 있는 지하철 역에서 출발해 먼저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에 갔다. 도착했을때의 사진.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얼마전에 읽은 소설 의 마지막 편에서 주인공 '나'는 4월 21일에 파리로 떠나는 티켓을 끊었다. 그 여행의 끝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았지만... 어쨌건 나는 4월 21일에 카잔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모스크바 기차역에 도착한 시각은 22일 새벽 5시. 아무래도 체크인 하기엔 이른 시간인듯 해서 대합실에 앉아 잠시 책을 읽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한 9288km(위키 기준 9344km),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모스크바에서 끝이 난다. 여기서 상트페테르부르크 까지 타게 될 열차는 그 거대한 철도의 곁가지에 불과하다. 횡단열차에 대해서는 글을 아예 하나 새로 파기로 하고, 어쨌건 한 시간정도 책을 읽고 지하철로 옮겨탔다. 짐도 많고 정신이 없어서 사진이 남아있지 않는데, 모스크바에서는 교통카드를..
잠들기 전까지도 퍼붓던 소낙눈은 밤새 그친 모양이다. 커튼을 열어놓고 잔 탓에 새벽부터 강렬한 햇빛에 눈이 떠진걸 보니. 시계를 확인하니 오전 6시. 아무래도 봄이 오는 날씨 탓인지 일어나 창밖을 보니 지붕의 눈들은 녹아내리는 중이었다. 하얗게 덮혀있던 마을이 제 색을 찾아내는 것은 그것대로 운치가 있었다. 그리고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오전 9시까지는 날이 반짝 좋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높을 깨워 세수, 양치만 하고 오전 7시에 집을 나섰다. 흔히들 러시아의 아침은 늦게 시작한다고들 한다. 사람들이 게으른건지, 아침이 늦게오기 때문인지, 관습인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버스를 타고 도착한 시내의 모습은 전혀 그래보이지 않았다. 벌써부터 인부들이 나와 거리의 눈을 치우고 가게들은 문을 열 준비를 하고있다. 물..
전날은 아쉬운대로 시내 구경을 마치고 숙소에서 영화를 하나 보고 잠들었다. 저녁을 먹을 때 쯤 부터 시작한 눈이 그 다음 날 하루종일 내릴거라곤 생각 못했지. 아침에 일어나니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우리가 머문 아파트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아, 오늘 밖에 나가기는 글렀구나. 누구도 말은 안했지만 그렇게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해서 그렇게 피곤한 상태는 아니었음에도 하루를 휴일로 잡고 뒹굴거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음식이었다. 당연히 시내를 나갈거라 생각해서 어제 저녁거리 정도만 사왔으니까. 시내구경 못하는 건 괜찮아도 굶는 건 참을 수 없어, 눈발이 약해진 틈을 타 호스트의 추천 맛집 베이커리를 향해 출발했다. 빵 사러 가는 길.. 여전히 눈은 내리고 쌓이고 발에 밟..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카잔은 기차로 15시간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이제는 그 정도 거리는 옆동네 가는 수준이다. 기차에 타자마자 저녁을 먹고 양치를 하고 누워서 자면 도착하니까. 카잔은 타타르스탄, 타타르 공화국의 수도이다. 이 타타르스탄은 1500년대에 러시아 제국에 편입된 타타르 인들의 자치 공화국이다. 러시아 연방정부로부터 꽤 많은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다고 하며, 무려 이슬람 문화권이다. 하지만 덮어놓고 이슬람 문화권이라기에는 애매한 것이, 종교를 믿는 인구 중 절반이 이슬람, 절반이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싸우지 않고 잘 지낸다거나, 두 종교의 축일을 모두 챙긴다거나, 한 시야에 정교회 건물과 모스크가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는 등 여러모로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우리가 카잔에서 머문..
마침내 일이 생겼다. 밤새도록 달려 우중충한 하늘을 떨쳐 낸 아침이었다. 요건 우리의 아침밥. 나중에 요약정리 하겠지만 저 칼과 왼쪽 위에 보이는 통이 그야말로 잇 아이템이다. 예카테린부르크에선 한나절 정도만 머무르고 바로 다음 도시로 이동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에 도착한 후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가볍게 밖으로 나왔다. 이 도시의 첫인상은 밝은 편이었다. 하늘도 맑고 처음에 마주친 사람들도 웃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짐을 맡기고 티켓을 먼저 출력하려고 역에 들어갔을 때 생겼다. 능숙하게 티켓을 출력하고 돌아나오던 길에 경찰 두명이 우리를 붙잡은 것이다. 인사를 하며 다가와 국적을 묻고 신분증과 등록증을 본 그들은 등록증의 기한이 다됐다며 우리에게 겁을 주었다. 무려 구글 번역기까지 사용해가며 ..
노보시비르스크의 하늘은 떠나는 날까지 변덕스러웠다. 이른 아침에는 새파란 하늘로 늦잠을 방해하더니 이내 비가 내린다. 호스트의 배려로 오후 세시로 체크아웃 시간을 늦춰둔 나는 일어난 김에 몸을 움직여본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물을 마시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지루해져 아침을 차려먹었다. 잠깐 시간을 두고 창 밖을 보니 이제는 눈발이 날리고 있다.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날씨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짐을 챙기고 청소를 했다. 택시를 타고 기차역에 내렸을 땐 작은 사건이 있었다. 군복을 입은 경찰이 우리에게 신분증과 외국인등록증 등을 요구하며 다가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여권과 입국증명서와 하바롭스크에서 받았던 등록증을 내밀었다. 그 서류들을 못마땅하게 받아 나를 위아래로 훑는 것은 뭐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 순..
기차는 아무 새론 소식도 없이 우리를 노보시비르스크에 내려주었다. 이미 해가 지고있던 터라, 호스트와 연락을 해 숙소 체크인을 했다. 그런데 이 숙소, 굉장히 좋다! 어느 아파트의 10층 원룸 하나를 빌려주는 건데, 층수가 있다보니 도시의 야경이 아름답게 보인다. 게다가 방도 깨끗하고, 무려 드럼세탁기와 굉장히 빠른 인터넷이 깔려있다. 이런 곳에다가 홍보를 해주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노보시비르스크에 오실 일이 있는 분들은 이 곳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 https://www.airbnb.co.kr/rooms/13694251 호스트 아주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나왔는데, 잘 웃는 얼굴의 아들은 우리를 근처 마트까지 인도해 주었다. 영어를 하지는 못하지만 나름 번역기 어플까지 준비해 온 세심함이 좋았다. 장..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첫 날은 카메라 센서와 렌즈를 청소하느라 온 시간과 정신을 다 소모했다. 내가 실행했던 단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소니 센터를 찾아간다. 이 곳 사람들은 소니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도시마다 소니 센터가 꽤 큰 규모로 존재하며, 센터라는 단어가 붙어있기에 당연히 서비스센터도 겸업할거라 생각했다. 결론은 어림도 없는 소리. 소니센터라 이름붙은 곳들은 전부 다 그냥 판매만 하는 매장일 뿐이다. 심지어 가서 카메라를 보여주고 상태를 설명해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직원이 절반은 넘는다... 2. 카메라 전문 매장을 찾는다. 이르쿠츠크가 큰 도시라서 그런지, 카메라를 전문으로 다루는 매장이 꽤 있었다. 그 중 커보이는 곳부터 순서대로 방문해 보았다. 이들은 나의 문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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