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3일, 금요일. 숙소 창문을 꼭 닫고 자지 않으면 자꾸 매연이 들어온다. 이중창을 단단히 닫고 따뜻하게 잤더니 개운한 아침. 우리는 Al-Shohadaa 역으로 이동해 하루를 시작했다. 우리만 그렇게 느꼈는 진 모르겠는데, 구글지도와 카이로 지하철 노선도의 차이가 심하다. 아마 Nasser역이라고 노선도에 표시된 곳이 같은 곳인 듯. 아무튼 역에서 내려 이슬라믹 카이로 방향 골목으로 들어가면 시장이 나온다. 아침이라 한참 빵을 굽고 있는 사람들. 외국인이 잘 다니는 길이 아닌지, 안그래도 빤히 쳐다보는 이집션들의 시선이 오늘따라 따갑다. 시장은 막 깨어나고 있는지 분주하다. 갓 구워진 빵을 머리에 이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그럴듯 하다. 각종 파스타를 저울에 달아 팔기..
이집트 박물관의 입장료는 120페소(성인)로 피라미드와 같다. 국제학생증이 있으면 물론 절반 가격. 카메라 촬영권과 미라 방(?) 입장권은 따로 추가가 되지만 우린 패스. 과연 예상대로 미라관을 빼고 관람해도 박물관 문 닫을 시간까지 간신히 다 구경했다. 게다가 캐나다 아재들 말로 카메라는 막지만 핸드폰은 막지 않는다고. 이럴 땐 이해하려고 하는 게 지는거다. 카메라는 바깥 보관소에 맡기고 홀가분하게 입장. 이집트 박물관은 소장품이 셀 수도 없이 많아 전시품에 별 신경을 안쓰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유리로 막아놓기는 커녕 오가는 사람들이 만져도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 나 개인적으로는 루브르, 오르쉐 다음으로 기대하던 곳이라, 사진은 많이 안찍고 구경하기 바빴다. 여러모로 사진권 안사길 잘했..
2017년 11월 2일, 목요일. 두 달만에 먹은 호스텔 조식은 우리를 여행자로 돌려놓았다. 기분좋게 체크아웃 한 후 우버를 불러 시내로 이동. 박물관 바로 옆 골목으로 숙소를 옮겼다. 피라미드 앞에서 박물관까지 50파운드도 안 나오는 걸 보면, 카이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마음이 싹 사라진다. 오늘은 올드 카이로, 혹은 콥틱 카이로와 박물관 구경을 하는 날. 출근시간이 조금 지난 시내는 한산하다. 아침에 겪은 교통체증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 날은 선선하고, 해는 따뜻하고. 걷기 좋은 날이다. 박물관 앞에서 지하철을 타고 역에 내리면 바로 콥틱 십자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작년에도 테러가 있었을 정도로 무슬림 국가에서 기독교인으로 살기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교회에 나와 차분이 ..
2017년 11월 1일, 수요일. 자정에 출발한 버스는 일곱시간 정도를 달려 수에즈 터널에 닿았다. 요 몇 년 새 늘어난 테러의 위협 때문에, 밤새도록 짐검사와 여권 검사를 받아야 해서 잠은 잘 자지 못했으나, 전부 내 안전을 위한 일이니 차라리 고마웠다. 수에즈 터널을 지나 두 시간, 잿빛 도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장거리 버스에 이은 생소한 풍경은 나를 다시 여행하는 기분으로 데려다 놓았고, 하루가 지나지 않아 질려버릴 도시의 소란마저 기분좋게 느껴졌다. 카이로 구경은 내일 하기로 하고 우리는 바로 기자로. 창문 밖으로 피라미드가 보이는 숙소에 체크인 했다. 카이로 시내에서 지하철을 한 번 타고(인당 2파운드), 가까운 역에서 내려 숙소까지는 우버를 이용했다(13파운드). ..
2017년 10월 31일, 화요일.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에도 해는 일찍 뜬다. 두 달을 넘게 체류하며 단 한 번도 일출을 보지 못한 우리는, 마지막 날이라도 힘을 내보기로 한다. 매일같이 걷던 바다로 가는 길도 바람막이가 없이는 힘든 새벽이 됐다. 아침저녁으로는 기온이 20도 아래로 떨어진다. 까딱하다간 감기 걸리기 십상. 다섯시 반 쯤 알람을 맞춰 바다에 나왔으나 이미 하늘은 붉어지기 시작한 뒤였다. 타임랩스 찍기는 포기하고, 사우디 아라비아를 거쳐 떠오르는 해를 기다린다. 주위를 둘러봐도 일출을 기다리는 인간은 우리 뿐이다. 가끔 물고기가 튀고 발 밑으론 게가 지나는 흔한 다합의 새벽. 다행히도(?) 해가 떠오를 때 까지 붉은 하늘의 시간이 길었다. 그간 느끼지 못한 새벽 분위기를 ..
무슬림 국가들, 아니 더운 지방이 으레 그렇듯 다합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우리 집이 위치한 곳은 인적이 드문데 밤에는 그 밀도가 더욱 낮다. 그렇다고 위험하진 않지만, 우린 항상 둘이 다니고 너무 늦은 시간엔 외출을 삼가며 지냈다. 집 근처에 살던 고양이. 오며가며 부르면 달려와서 애교를 부리며 주변을 맴돈다. 두 달 지내면서 꽤 안면을 터서인지 우리 목소리만 들려도 어디선가 뛰어나오지만 움직임이 너무 빨라 찍을 수가 없다. 사료나 간식을 사서 먹이려 했으나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같아서 참기로. 매일 새파란 다합 하늘은 밤에도 청명하다. 동네 불빛 덕에 쏟아진다고 말할 만큼은 못되지만, 그럭저럭 하늘을 채울 정도로 별이 뜬다. 건조하고 깨끗한 하늘의 가장 좋은 점은 바닷가에서 별을 ..
다합은 항상 맑다. 비는 커녕 구름도 보기 힘든 전형적인 사막 기후다. 항상 푸른 하늘로 시작해서 빨간 노을로 끝나는 하루는 건조하고 쾌적하지만 장마의 나라에서 온 우리에겐 2% 부족함을 느끼게 한다. 우습게도 포즈 두 이과수 공항에 도착해 열대 기후를 만나고 반가워했다는 뒷이야기. 아무튼 별 일 없는 낮에는 사진기를 들고 산책을 나선다. 천천히 걸으면 사람이 많이 없는 바다는 전부 내 것 같다. 열대열대한 풍경. 하지만 결코 습해지는 법이 없다. 길게 이어진 해변은 낮에도 밤에도 기분 좋다. 의외로 모기나 파리 등 벌레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장점. 다합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시공간인 금요일 플리마켓. 가끔 멍청미 돋는 염소들이 나를 웃기고 카메라만 보면 달려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따봉을 날리는 ..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다합 하면 다이빙이다. 간혹 물놀이가 취향에 맞지 않거나, 건강 상태로 인해 다이빙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나, 다합행 버스를 탄 나의 목적은 오로지 다이빙 이었다. 다합에는 10여개의 다이빙 포인트가 있으며, 각각의 특징은 샵에 문의하면 매우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날이 좋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있으니, 아침에 페이스북 메시지를 이용해 문의 해보는 것도 요령이라면 요령이다. 우리는 그냥 시간이 나면 가서 가능한 곳에 들어갔다. 앞바다 다이빙. 처음 펀다이빙인데 시야가 최악인 날이었다. 같이 다이빙하는 팀도 조금만 멀어지면 안보이는 마법. 당황스러워도 그냥 하던대로 하면 가이드들이 잘 인도해 준다. 설상가상으로 높의 BCD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B..
다합은 식재료가 풍부한 마을이 아니다. 아니 꼭 다합이 아니라 내겐 중동권 전체가 그렇게 느껴졌다. 내가 느낀 결핍의 대부분은 돼지고기의 부재에서 온 것이라, 식재료의 부족은 한참 주관적인 평이다. 실은 오히려 그 반대인데, 있을건 다 있으면서도 과일이 특히 저렴하고 맛있다. 멜론, 망고, 자두를 비롯한 과일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저렴해 매일같이 흡입했던 것 같다. 거기에 저렴하고 맛있는 유제품들은 또 어떻고.... 그리고 이집트 식재료의 가장 멋진 부분은 바로 감자! 감자는 튀긴거 말고는 잘 먹지 않는 나에게 이집트 감자는 충격이었다. 조금 과장을 섞으면 고구마보다 달고 맛있는 이집트 감자!!!! 하루가 멀다하고 감자조림을 만들어 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진은 생략. 어찌됐건 두 달을 살기로 한..
2017년 8월 27일, 일요일. 다합은 여행을 출발하기 한참 전부터 기대하던 곳 중의 하나다. 깨끗한 물과 낮은 물가와 여유롭게 흐르는 시간까지.. 나름대로 바쁘게 다니던 여행의 휴식지로는 다합만한 곳이 없어 보였으니. 따라서 당연하게도 다합으로 오는 발걸음은 가볍고 즐거워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 반대. 우리는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채 난파선처럼 다합에 닿았다. 아직 낮이고 밤이고 울다 잠들기를 반복해도 파헤쳐진 마음은 채워지지 않아, 여행을 끝내야 하는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날들이었다. 그런 마음 상태를 가지고 만난 다합과 다합의 이집션들은 충분히 따뜻했고, 우리는 여행을 계속하되 아프리카 종주를 포기하고 다합에서 두 달을 머물기로 했다. 결정한 이상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짐을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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